최누백의 효행
고려 시대의 이야기이다.
“아버지, 이번 사냥에는 저도 데려가 주세요.”
“안된다. 너는 사냥을 나가기엔 아직 어리다.”
“제 나이 올해 열다섯입니다. 게다가 웬만한 어른을 뺨칠 만큼 활을 잘 쏜다는 것은 아버지도 아시잖아요.”
“알고 있다. 하지만 사냥을 가고 싶다면 활쏘기 공부를 좀 더 하거라. 내년에는 꼭 너를 데리고 가마.”
“알겠습니다. 아버지! 그 동안 활쏘기 공부를 열심히 하겠습니다.”
사냥을 떠나는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는 소년의 이름은 최누백이었다.
누백의 아버지는 평소에 사냥을 무척 좋아했다. 그래서 시간이 날 때면 가끔 산으로 사냥을 가곤 했다. 옛날에 나라의 산에는 호랑이가 많았다. 그래서 여간 담이 세지 않고는 깊은 산으로 사냥을 하러 갈 수가 없었다. 호랑이는 때때로 서울에까지 나타나서 사람을 해치거나 가축을 물어 가곤 했다. 그래서 서울 가까이에 사는 사람들은 마음 놓고 밤길을 다니지도 못했다. 그런데도 최누백의 아버지는 사냥을 좋아하는 친구들하고 어울려 가끔 깊은 산으로 사냥을 나갔다.
“여보 이제 사냥은 그만두는 게 좋겠어요. 이름난 포수들도 호랑이에게 화를 입는 세상이랍니다.”
누백의 어머니가 걱정스런 목소리로 말렸지만, 아버지는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염려 마오. 여러 사람이 함께 가니 별일은 없을 것이요.”
그러나 그 날 저녁 누백의 집에는 날벼락 같은 소식이 날아들었다. 이웃 사람이 달려와서 누백의 아버지가 호랑이에게 물려 갔다고 전해 주었던 것이었다.
“아이고, 아이고! 이 일을 어쩌나!”
누백의 어머니는 아들을 끌어안고 통곡했다. 누백은 두 주먹으로 눈물을 훔치면서 말했다.
“어머니 제가 아버지의 원수를 갚겠습니다. 그 호랑이를 제 손으로 꼭 잡고야 말겠습니다.”
이튿날 아침 일찍 누백은 사냥 나갈 준비를 했다. 어깨에는 활을, 등에는 화살통을 메고 허리에는 날이 시퍼런 도끼를 차고 문을 나섰다. 그 모습을 본 누백의 어머니는 혼비백산하여 버선발로 뛰어나왔다.
“안된다. 누백아, 제발 가지마라. 어른들도 물어가는 호랑이를 네가 어찌 당하겠느냐? 그러다 너까지 변을 당하면 이 어미는 어찌 살란 말이냐?”
“어머니, 염려 마십시오. 이 두 손으로 꼭 호랑이를 잡아서 아버지의 원수를 갚고 그 영혼을 위로해 드리겠습니다.”
소식을 들은 동네 사람들도 누백의 집 앞에 모여들어 길을 가로막고 말렸다.
“아닙니다. 자식 된 몸으로 아버지의 원수를 갚지 못한다면 부끄러워서 어찌 하늘을 쳐다 볼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가게 해 주십시오.”
자신의 뜻을 굽히려 하지 않는 누백을 본 마을 사람들은 하는 수 없이 길을 비켜 주었다. 누백의 아버지와 함께 사냥을 떠났던 마을 어른은, 호랑이를 만났던 곳을 자세히 설명해 주면서 말했다.
“꼭 아버지의 원수를 갚게나, 하지만 부디 조심해야하네.”
누백은 이를 갈면서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갔다. 아버지가 호랑이를 만났다는 계곡 근처에 이르자, 가까운 곳에서 까마귀 떼 우짖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그 곳으로 달려가 보니, 아버지가 입었던 옷가지가 이리저리 흩어져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한쪽에는 피가 엉겨 붙은 뼈가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있었다.
‘아버지의 뼈가 틀림없구나……’
눈물을 글썽이던 누백은 갑자기 숨을 죽이고,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바위 쪽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바위 뒤쪽에 얼룩얼룩한 호랑이의 등가죽이 보였던 것이다. 조심스럽게 다가가 보니 과연 그 곳에는 호랑이가 길게 누워 있었다. 사람의 살을 뜯어먹고 배가 잔뜩 부른 호랑이는 바위 옆에 누워서 끔벅끔벅 졸고 있었다.
“네 이놈! 호랑아, 내 도끼를 받아라!”
누백은 도끼를 들어 올린 채 벼락같이 소리쳤다. 그 바람에 호랑이가 눈을 번쩍 떴다.
“이 원수 놈아! 네 놈이 내 아버지를 먹었으니 나도 너를 잡아먹어 피맺힌 원한을 풀어야겠다.”
도끼날을 겨누는 누백을 향해 호랑이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서서히 다가왔다. 누백은 호랑이의 정수리를 향해 힘을 다해 도끼로 내려쳤다.
“어흐흥!”
그 순간 호랑이의 사나운 울음소리가 온 산을 뒤흔들었다. 호랑이는 쿵 소리를 내며 그 자리에 털퍼덕 쓰러졌다. 누백의 도끼날은 호랑이의 두개골을 정확하게 내리쳐 두 쪽을 냈던 것이다. 누백은 호랑이의 배를 갈랐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며 호랑이 뱃속에 남은 아버지의 뼈를 거두어 모았다. 뱃속에서 거둔 아버지의 뼈와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옷가지를 한 곳에 모아 놓고 누백은 큰절을 올렸다.
“아버지, 제가 아버지의 원수를 갚았습니다. 이제 편히 눈을 감으십시오.”
누백이 아버지의 시신과 함께 죽은 호랑이를 끌고 마을로 돌아오자, 사람들은 입이 닳도록 누백의 효심과 용기를 칭찬했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른 누백은 무덤 곁에 오두막을 짓고, 3년 동안 무덤을 지켰다.
어느 날 누백이 무덤 앞에서 곡을 하고 있을 때였다. 어디선가 아버지가 나타나더니 시를 한 수 읊는 것이었다.
가시덤불 헤치고 효자의 오두막을 찾으니
다정한 눈물이 다할 줄 모르네.
날마다 흙을 져다 무덤에 보태니
이를 아는 이는 청풍과 명월뿐이네.
살아서 잘 섬기고 죽어서 무덤을 지키니
그 누가 효도가 한결같이 않다고 하랴.
“아버지!”
큰 소리로 아버지를 부른 누백은 눈을 번쩍 떴다. 꿈을 꾼 것이었다. 꿈속에서 아버지를 만난 누백은 기쁜 마음으로 더 정성껏 무덤을 지켰다. <최누백의 효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