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범의 시

재미난 후기가 달린 시(46, 11월)

이효범 2020. 10. 29. 18:39

 

 

o 11

 

구녕 이효범

 

높은 담은 도둑이 넘으라고 있다.

두꺼운 유리는 총알이 박살내라고 있다.

집에서 기른 개는 복날에 잡아먹으라고 있다.

손으로 쓰는 연필은 학생이 창밖으로 집어던지고

하얀 종이는 어린 아이가 찢으라고 있다.

먹지도 않고 자지도 않으면서 아비가 번 돈은

자식이 불로 태우라고 있고

발가락이 빠지도록 걸어온 사람의 발자국은

바람이 신나게 지우라고 있다.

호적에 등재된 이름은 세상에 부끄러워지라고 있고

가냘픈 희망은 구름처럼 포기하라고 있다.

, 하느님

당신이 기쁨으로 만든 사람은 왜 멍청하게 있습니까.

그리고 당신은 왜 조용히 바라만 보고 계십니까.

 

후기:

11월의 나무는 풍성했던 나뭇잎들이 모두 떨어져 홀로 수도승처럼 대지 위에 서 있습니다. 들녘은 가을걷이가 끝나고 공허한 모습을 드러냅니다. 생명은 치열했던 투쟁을 멈추고 외부로 향하던 시선을 내부로 돌려 반성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11월은 휴식의 시간이기도 하지만 후회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인생의 마지막을 맞이하여 사람들은 왜 삶은 한번 뿐인데,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을 하지 않고 살았나를 가장 많이 후회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인간관계에 있어서 왜 그렇게 모질었는가를 후회한다고 합니다. 주변의 가까웠던 사람들을 더 많이 관용하고 용서하지 못한 점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남에게 베풀지 못한 점을 후회한다고 합니다. 비록 가난한 살림이지만 자그마한 베품은 그래도 마음만 먹으면 가능했을 텐데 그러지 못한 것을 아쉬워합니다.

후회가 깊으면 절망을 낳고, 절망은 다시 원망을 낳습니다. 원망은 결국 근원자로 향합니다. 성난 외침에 답변이 가능한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근원자로부터 오는 목소리는 은밀하고 私的이니까요. 그래도 나는 인간에게는 解冤의 길이 반드시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