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에서 보내는 편지(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4(아시아적 가치는 유효한가))
o 세종에서 보내는 편지(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4 ( 아시아적 가치는 유효한가))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계속되고 있는 멋진 가을입니다. 할 일 없는 저는 하루 종일 컴퓨터에 매달려 있습니다. 아내는 제가 대학에 재직할 때 보다 더 많이 연구한다고 불평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부끄럽게도 대학에 있을 때는 많이 게을렀습니다. 그리고 딴 짓도 많이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다 부질없는 일인데 그 때는 왜 그 쓰레기 같은 일들이 그리 소중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학자로서 부끄러움이 소나기처럼 내립니다. 이제 시간도 통째로 주어지고, 누구 눈치도 보지 않아도 되는 무한한 자유가 생겼으니, 나는 아무 글이나 쓰고, 할 말 안할 말을 가리지 않고 그저 지껄입니다. 감사한 날들입니다.
오늘은 <우리의 미래 어떻게 만들 것인가> 4편을 보내드립니다. 1편은 우리 역사 반성, 2편은 한국인은 누구인가, 3편은 우리 시대의 정체성에 대해 논했습니다. 이번 4편은 유교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마지막 5편은 우리의 미래 전략에 대해 논해볼까 합니다만 잘 될지 모르겠습니다. 이번 4편은 몇 년 전에 썼던 글을, 이 주제에 연결되는 것 같아 조금 개작해보았습니다. 모든 저의 글들이 내용도 없이 길기만 하니, 읽어주시면 참으로 고맙고, 읽지 않으셔도 무방합니다. 저도 긴 글을 보면 “저 잘 났어.” 욕하고, 전혀 읽지 않거든요. 그러니 그냥 세종에서 이효범이 심심해서 저런 맹랑한 짓을 하고 있구나, 아직도 살아 있구나 하고, 웃으면서, 제 글을 그대로 지나치면 좋겠습니다.
o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4(아시아적 가치는 유효한가)
구녕 이효범
(1) 동양과 서양의 사유체계는 다르다. 단적으로 말해 동양은 우뇌적이고 서양은 좌뇌적이다. 새뮤얼 헌팅턴은 『문명의 충돌』에서 문명 간의 충동을 말한다. 그 이유는 이렇다. 현재 지구상에 서구, 유교, 일본, 이슬람, 힌두, 슬라브, 라틴아메리카 그리고 아프리카 문명이 있다. 이런 문명 간의 차이는 실재적이며 기본적이다. 서구에 사는 이슬람을 믿는 사람들의 행동에서 보이는 것처럼, 문명권끼리의 동질성을 확인해주는 自意識인 문명의식이 더욱 강화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종교적 근본주의 같은 것이 국경개념을 약화시키면서 같은 문명끼리의 통합을 강화시킨다. 비서구 세계의 뿌리 찾기 운동이 발생한다. 문명적 특성과 차이는 정치나 경제적인 차이보다 더 오래 지속되어서 타협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경제적 지역주의의 증가 추세 때문에 문명의 중요성은 더욱 높아진다.
헌팅턴은 서구와 비서구 사이의 갈등이 고조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그런데 비서구 대열 중에서 유교-회교연대(Confucian-Islamic connection)가 서구에 대항할 수 있는 가능성이 가장 크다. 중국, 인도, 북한, 리비아, 이라크, 이란, 파키스탄, 알제리가 그 중심축을 이룰 것이다.
헌팅턴의 말대로 세계의 여러 문명들은 서로 충돌할 것인가? 오히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세계의 정치구조, 경제체제, 그리고 가치관들은 하나로 수렴될 것이라고 예언한다. 후쿠야마는 『문명의 종말』에서 이미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최종 승리를 거두었으며, 이를 뒤집을만한 사건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모든 문화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체제로 수렴할 것이라는 후쿠야마의 견해는 많은 서양인들, 특히 미국인들의 생각과 일치한다.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여러 현상들이 쉽게 관찰된다. 세계 어디를 가든 사람들은 청바지에, 나이키를 신고, 코카콜라를 마시며, 미국 음악을 듣고, 미국 텔레비전 프로를 시청한다. 또한 동양의 학교는 자국의 전통적인 사유체계와 도덕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서구가 발전시킨 논리적 분석과 비판적 사고 그리고 시민윤리를 교육시킨다. 세계는 그 어느 때보다 서구화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리처드 니스벳(Richard E. Nisbett)은 『생각의 지도』에서 동양과 서양의 차이는 수렴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사회 구조와 가치관에 있어 서양적인 것과 동양적인 것들이 서로 결합되는 상태에 도달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서양은 점점 동양적인 것에 매력을 느끼고 있다. 비록 세계 곳곳의 사람들이 코카콜라를 마시고 청바지를 입고 있지만, 서양의 요리는 이미 동양 요리를 가미한 퓨전 스타일을 지향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미국 내 중산층 유대인들의 휴양지였던 곳들에 불교 사원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미국에서 불교는 개신교보다 더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또한 많은 서양 의사들이 동양 의술을 부분적으로나마 받아들이기 시작했으며, 두통이나 구토 같은 증상에는 서양 의학보다는 동양 의학의 치료법을 권하기까지 한다. 수많은 미국인들이 요가나 중국의 기체조를 배우고 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리고 서구의 개인주의가 인간 소외를 초래한다고 믿게 된 많은 미국인들이, 이제 동양적인 공동체를 통하여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20세기의 저명한 물리학자인 닐스 보어는 양자역학에서 자신이 이룬 업적은, 동양 사상을 물리학에 접목시킨 덕분이라고 주장하기까지 한다.
서양과 동양은 서로 충돌할 것인가, 아니면 서구로 흡수될 것인가, 아니면 서로의 문화를 수용하여 중간쯤에서 적당하게 조화될 것인가? 예측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문명의 중심축이 서구 중심에서 동양권으로 이동한다면, 아마 현재 미국과 중국 간에서 보이는 것처럼 충돌하든가 아니면 중간에서 적절하게 조화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러나 서구가 몰락하지 않고 계속 강성해진다면 지구의 모든 문명이 서구로 흡수될지도 모른다. 이런 갈림길에서 우리가 속한 유교 문명권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그리고 유교 문명권을 하나로 묶는 유교의 가치관은 현대와 미래에 과연 어떤 의의가 있을까?
(2) 경제와 정치, 그리고 문화와 도덕은 서로 의존적인 체계를 형성하고 있다. 그런데 기존의 주류경제학에서는 기계론적 관점에서 시장 질서를, 다른 사회적 과정들과 떨어져 존재하는 것으로 간주하였다. 따라서 이들 주류 경제학자들은 경제현상을 오로지 합리적 선택에 기반한 수요와 공급의 법칙으로 설명하며, 윤리나 도덕 등 소위 가치의 문제를 배제하였다. 價値中立的이어야만 비로소 과학이라는 칭호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계량 과학주의적 주류 경제학을 비판하면서, 시장에서의 도덕성을 중요한 요소로 강조하는 경향이 등장하고 있다. 이런 경향에 따르면 도덕적 기초가 전제되지 않는 시장은 약육강식의 도살장으로 변한다. 그리고 정신적 가치를 무시한 교육은 무한한 물질적 탐욕을 정당화하는 교육일 뿐이다. 그러한 교육의 결과는 사회를 불안하게 하고, 사회를 통합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해체시킬 뿐이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트러스트(trust)』에서 한 국가의 발전은 그 나라의 신뢰지수에 비례한다고 주장한다. 신뢰라는 가치야말로 시민적 자율, 책임, 권리, 의무를 기초로 성립하는 시민사회와 그에 바탕한 공동체를 가능케 하는 핵심개념이다. 어떤 공동체 안에서 구성원들이 보편적 규범에 입각하여 규칙을 지키며, 정직하고 협동적으로 행동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바로 신뢰이다. 이런 신뢰가 공동체의 초석이 될 것임에는 틀림없다. 제임스 새뮤얼 콜만(James Samuel Coleman)도 신뢰를 일종의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으로 중요시 한다. 한 나라의 경제적 번영을 위해서는 기술과 지식이라는 자본 이외에, 사람들을 결속시킬 수 있는 능력인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헌팅턴도 『문화가 중요하다』에서 1960년대 가나와 한국의 경제 상황이 비슷했다고 진단한다. 1인당 GNP수준도 비슷했고, 1차 산업과 2차 산업 그리고 서비스가 경제를 점유하는 분포도 비슷했다. 특히 농산품의 경제 점유율이 아주 유사했고, 상당한 경제 원조를 받고 있었다는 점도 공통적이었다. 그런데 30년 뒤 한국은 세계 14위의 경제 규모로 성장했고, 유수한 다국적 기업을 갖추고, 자동차, 전자 장비, 고도로 기술 집약적인 2차 제품 등을 수출하는 나라가 되었다. 이에 반해 가나는 1인당 GNP가 한국의 1/15의 수준으로 영세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런 차이의 결정적인 요인을 헌팅턴은 문화로 설명한다. 그가 말하는 문화란 한 사회 안에서 우세하게 발현하는 가치, 태도, 신념, 지향점, 전제조건 등이다. 한국인은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는 발전 지향적 문화를 형성하고 검약, 투자, 근면, 교육, 조직, 기강, 극기정신 등을 하나의 가치로 생각하는데 반해 가나인은 발전 저항적 문화와 한국인들과는 다른 가치관을 가졌기 때문에 경제 성장이 지체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3) 경제발전에 도덕적 가치, 더 나아가 헌팅턴이 주장하는 것처럼 문화가 중요시되는 가운데 동아시의 중심적인 가치라고 할 수 있는 아시아적 가치는 현대 자본주의에서 어떤 기능을 할 것인가? 사실 아시아적 가치는 애매모호한 개념이다. 경제적 영역에서 이 말은 서구의 학자들이, 70-80년대 아시아의 신흥공업국들의 경제적 기적을 설명하기 위하여 도입한 개념이다. 칸(Herman Kahn)이나 보겔(Ezra Vogel)과 같은 학자들이 아시아의 신흥공업국 특히 아시아의 네 마리 작은 용들이 모두 우연하게 유교문화권에 속한다는 점에 착안하여, 이들 나라들이 갖고 있는 문화적 유산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세계시장 조건 속에서, 경제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이점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90년대 말 아시아에 경제위기가 도래하자 이번에는 많은 서구의 학자들이 유교적 가치가 아시아를 위기로 몰아넣었다고 비판하였다. 1998년 조지 메이슨 대학에서 ‘아시아의 윤리, 제도, 그리고 경제’라는 세미나가 열렸다. 여기에서 아시아 지역의 문화에 내재한 정실 인사, 부패, 뇌물, 기업운영의 불투명성, 연고주의, 정경유착 등이 경제위기의 주범이라고 결론하였다. 폴 크루그만(Paul Krugman)도 아시아의 역동성과 그 가치에 깊은 의문을 제기한다. 그는 동아시아인들이 자유시장과 시민적 자유에 관한 서방 세계의 신념을 공유하고 있지 않다고 비판한다. 그들은 공공가치의 추구를 위해 개인적 이익을 쉽게 포기하며, 시민적 자유를 제한하는 강력하고 권위주의적인 정부를 갖고 있다. 동아시아는 근본적으로 50년대의 동유럽과 소련의 양태와 유사한 길을 밟고 있다. 이 지역에서는 자기최면 상태의 대중적 열망과 현실적 전망 사이에 현저한 간극이 있다. 잘 나가던 때 소련의 성장률은 미국의 3배를 기록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기록은 집단주의적이고 권위주의적인 국가적 특성 때문이었다. 동아시아의 빠른 성장도 자원의 엄청난 동원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싱가포르는 1966년에서 1990년 사이 연 8.5%의 높은 성장률을 보였는데, 이 기간 중 인구 대 노동 비율이 27%에서 51%로 뛰었다. 경제 위기를 겪고 있는 아시아 나라에서는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사이의 구분이 모호하다. 장관의 조카나 대통령의 아들이 은행을 개설하고, 자국민과 외국 투자가들의 돈을 모은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은 이들 운행들의 든든한 정치적 배경을 믿으면서 자신들의 돈이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정부가 은행 예금을 보장해주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관행이다. 그러나 이러한 보장은 몇 개의 조건을 수반한다. 은행의 소유주들은 최소한의 자금요건을 충족해야 하며 (즉 자신들의 돈을 걸어야 한다) 지혜로운 투자를 해야 한다. 그러나 아시아 국가들에서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특권을 누리면서도 책임은 지지 않아도 되었기에, ‘땅 집고 헤엄치는’는 장사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은행 대출은 매우 위험한 부동산 투자와 어이없을 정도로 과욕적인 기업 확장에 이용되었다.
이런 크루그만의 비판적 지적을 한국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한국이 유교문명의 영향을 받은 것이 정경유착과 가족제도를 바탕으로 하는 재벌과 정부 사이의 대단히 복잡하고 애매한 관계로 나타났다. 그리고 자본주의와 관련된 측면에서 지연과 학연을 중시하는 인간관계로 나타났다. 이는 초보적인 자본축적 단계에서는 어느 정도의 힘을 발휘할지 모르지만, 법률의 감독과 국제금융의 관리를 받는 현대 서양 문명이 이끄는 다국적기업들과는 비교도 될 수 없는 후진적인 현상이다.
시장경제와 민주정치, 시민사회 그리고 이러한 요소들로 대표하는 가치가 중요시 되는 자본주의 문명에서 유교적 가치는 과연 의미가 있을까? 있다면 어떤 점이 자본주의를 발전시킬 수 있는 긍정적 기여를 할까? 아니면 유교는 긍정적인 측면보다는 부정적인 측면이 너무 많기 때문에 아예 버리고 다른 이념으로 대체해야 하는가? 근본적인 대체가 바람직하다고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그것이 가능할까?
이런 질문에 이분법적인 黑白의 논리로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고 주장하거나, 맹목적인 유교의 신봉자처럼 유교의 가치만이 모든 병폐를 치유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이라고 입에 거품을 품고 역설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싫든 좋든 유교적 가치가 이미 국민의 삶을 지배하고, 우리 전통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상황에서, 유교적 가치를 반성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땅으로 넘어진 자는 일어서기 위해서 그 땅을 다시 밟을 수밖에 없고, 그 땅의 지형을 정확히 살펴야 다시 넘어지지 않고 똑바로 걸어갈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유교의 핵심 가치들을 모두 점검할 수는 없다. 현대에도 의미가 있는 몇 개만 살펴보자.
(4) 아시아 신흥공업국들이 경제적 기적을 이룬 절대적 요인은 교육의 힘이었다. 이들은 전 세계 어느 지역보다 교육에 관심이 많았고, 자식의 성공과 출세의 지름길은 교육이라고 생각하여, 교육에 대한 투자를 제일의 순위로 삼았다. 이런 강한 교육열은 유학의 전통에서 기인한다고 유추할 수 있다.
유학은 전통적으로 학문을 매우 중시하였다. 일찍이 공자는 『논어』의 맨 첫 글에서부터 학문을 강조한다. “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역시 기쁘지 아니 하겠는가.” 논어가 말하려는 결론이 첫 장에 나와 있다는 것을 감안할 때, 이 구절이 주는 의미는 매우 의미심장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공자가 말한 자신의 성장과정을 묘사하는 대목 속에서도 학문의 가치를 중시하는 대목이 나온다. “나는 열다섯 살에 학문에 뜻을 두고, 삼십 살에 설 수 있었다.” 이 구절로 볼 때 그의 인간적 성장의 기초가 학문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공자가 중시하는 학문은 어떤 학문인가? 그것은 한마디로 君子가 되기 위한 방법이다. 공자는 인간은 누구나 하늘로부터 仁이라는 착한 본성을 부여받았으나 후천적인 영향으로 어리석고 현명함에 차이가 생긴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그는 사람을 生知, 學知, 困知, 下愚라는 네 등급으로 나눈다. 생지는 태어나면서 총명함으로써 능히 문리를 자세히 관찰할 수 있는 것이고, 학지는 널리 학문을 닦고 언행과 예절을 바르게 하여 이치를 터득하는 것이고, 곤지는 애써 지식을 아는 것이고, 하우는 자포자기하고 공부하지 않는 경우이다. 이와 같은 등급의 차이는 있으나 누구나 自强不息하며 공부하면 天人合一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 공자의 신념이다.
공자는 자신을 쉼 없이 진리를 탐구하며,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데 열중하여 식음을 잊을 정도로, 순수하고 진지한 열정의 소유자라고 자평한다. 이런 공자가 생각한 理想的 인간상이 바로 군자이다. 그러면 군자는 누구인가? 우선 군자는 인이라는 소박한 품성(質)과 세련된 교양(文)을 갖춘 사람이다. “質이 文을 압도하면 거칠어지고 문이 질을 압도하면 겉만 번지르르해진다. 문과 질이 고루 갖추어진 다음에야 군자라 할 수 있다.”
세련된 교양인 文을 갖추기 위해서는 學問과 禮와 藝가 필요하다. “도에 뜻을 두고 덕에 의거하며 인에 의지하여 예에서 즐긴다.” 우리는 여기서 공자가 藝를 강조하고 있음을 볼 수 있는데 그 중에서도 그는 시와 음악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시를 통해서 감흥이 일어나고 예에 의해서 원만한 행위를 할 수 있게 되며, 음악을 통해서 심성의 조화가 이루어진다.”
공자가 말하는 이상적인 인간상인 군자는 小人과 대비되는 개념이다. 군자는 덕을 마음에 품고 소인은 땅마지기나 생각하며, 군자는 법도에 맞는 것을 생각하고 소인은 혜택 받기를 기다린다. 군자는 義에 밝은데 소인은 利에 밝다. 또한 군자는 서로 친밀하되 패거리를 만들지 않는데 소인은 패거리를 만들되 진실한 정이 두루 통하지 않는다.
원래 君子는 지배 귀족의 성원(君)과 자손(子)을 뜻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공자는 이러한 의미를 새롭게 바꾸었다. 공자의 시대까지 군자라는 말은 거의 보편적으로 ‘紳士(gentleman)’라는 낱말의 원의와 흡사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평민층보다 높은 계층에 속했던 조상의 후예인 명문 출신의 사람들을 가리켰다. 그러한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군자가 되었다. 그렇지 않고는 아무도 군자가 될 수 없었다. 군자는 아무리 그의 행동을 비열하게 하더라도 군자일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용어를 공자는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그는 누구든지 행동이 고귀하고 이기심이 없으며, 정의롭고 친절하다면 군자가 될 수 있다고 언명하였다. 또 그는 아무도 출신 성분에 따라 군자로 간주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오로지 행위와 인품이 군자를 판단하는 기준이라는 것이다.
공자는 그 당시 모든 사람들이 출신 성분에 상관없이 편벽되고, 자기의 이로움만 생각하고, 교만하고, 남을 헐뜯기 좋아하면서, 항상 근심 걱정에 싸여 있어 사회가 극도로 혼란한 것을 보고 그들을 소인이라고 불렀다. 공자가 말하는 군자와 소인의 차이는 분명하다. “군자는 정의를 추구하고 소인은 이익을 추구하며, 군자는 마음이 조용하고 넓지만 소인은 언제나 불안에 싸여 있고, 군자는 두루 원만하며 무리 짓지 아니하고 소인은 무리 짓고 두루 원만하지 아니하며, 군자는 교만하지 않으면서도 위엄이 있지만 소인은 위엄이 없으면서 교만하며, 군자는 슬픈 일을 당해도 자제할 줄 알지만 소인은 조그만 슬픈 일에도 자제심을 잃는다.”
공자는 기존의 ‘군자’라는 개념을 수정하여 군자를 이상적인 사회인상으로 내세워 누구나 스스로 군자가 될 것을 요구하였다. 군자에 대한 이런 의미의 전환을 통해 공자는 도덕적 사회의 혁명을 기도했다. 이런 군자는 내적으로는 인간의 공통적인 본질인 인을 체득해서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다. “군자가 인을 버린다면 어떻게 군자라고 불릴 수 있겠는가? 군자는 밥을 먹는 동안에도 인을 어김이 없으며, 급한 경우에도 반드시 이에 의하고 위급한 경우에도 반드시 이에 의한다.”
인을 체득하기 때문에 군자는 마음가짐이 의연하고 물질적 안락보다는 정신적 풍요함을 추구할 수 있다. “남들이 자기의 능력을 알아주지 않는다 해도 화를 내지 않는다면 군자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군자는 식사하는 데 배부르기를 바라지 않고, 거처하는 데 편안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일을 하는 데 민첩하고, 말하는 데 조심스럽고, 인격을 갖춘 사람을 본받아 자신을 바로 잡는다면 그 사람은 배우기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군자는 외적으로는 인을 실현하려는 무거운 책임 의식을 가지고 스스로 예에 따라 의롭게 행할 뿐만 아니라 타인의 인격을 완성하도록 도와준다. “군자가 의를 바탕으로 삼아 예에 따라서 의를 행하고 겸손한 태도로 의를 실천하며 믿음으로 의로운 일을 성취시킨다면 참으로 군자라 할 수 있다.” “그대가 선하고자 하면 백성이 저절로 선하게 될 것이다. 군자의 덕은 바람과 같고 소인의 덕은 풀과 같다. 풀 위에 바람이 스치면 풀은 반드시 누울 것이다.”
또한 군자는 역사와 대자연 앞에서 일종의 사명감을 가지고 있는 존재이다. 공자가 가진 사명감은 그의 앞선 세대로부터 전승되어 온 가치 있는 경험과 문화를 발양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군자는 세 가지를 두려워한다. 첫째는 천명을 두려워하고, 둘째는 큰 인물을 두려워하고, 셋째는 성인의 말씀을 두려워한다. 이에 반해 소인은 천명을 몰라서 두려워하지 않고, 큰 인물에게 가까이 굴며 경시하고, 성인의 말씀을 조롱하는 사람이다.
지금까지의 긴 논의를 요약해 볼 때 군자는 내적인 어진 마음의 상태와 외적인 예에 맞는 행위, 더 나아가 교양과 학문을 두루 갖춘 文化人이나 知性人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는 특정한 지식만을 가진 전문가가 아니고 모든 것에 통달한 全人이다.
(5) 공자가 말하는 학문의 목적이 군자가 되는 것 즉 학문의 본질이 수양이라는 것은 어떤 의의와 한계를 가질까?
우선 이런 학문관은 자연과학적인 탐구보다 인문과학적인 탐구를 중요시한다는 특징이 있다. 앞에서 거론한 『논어』 首章에 나오는 ‘學而時習之’라는 표현은 군자학의 본질을 잘 나타낸다. 여기서의 학의 내용은 윤리적 덕목이다. 그리고 學은 習을 통해서 달성되며 그 습은 실천적인 행위를 통해서 가능하다. ‘習’ 자는 원래 ‘羽’와 ‘日’의 合字이다. 즉 새가 날로 나래질해서 나는 것(飛)이 새의 속성이 되어버리듯, 어떠한 행위를 자꾸만 거듭함으로써 그것이 生理로 변해지도록 한다는 것이 습의 本意이다. 이 습의 본의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이 유가적 학은 실천적인 학이요, 體得의 학이다. 이런 실천적이고 체득의 의미로서의 학문의 성격은 『小學』이나 『大學』 그리고 『中庸』에 잘 나타나 있다. 그러므로 유학의 학문은 서양의 학문처럼, 對象을 客觀化하여 이를 知的으로 파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오히려 修行을 존중하여, ‘사물의 본성을 온전히 실현함’과 ‘만물은 함께 양육되면서도 서로 해치지 않는다’와 같은 정신을 체득시키는 것이 주목적이 된다.
물론 인간은 자연자원을 개발하여 생존을 도모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유학은 ‘利用厚生’이나 ‘開物成務’ 등의 정신도 가지고 있었다. 『대학』에서 말하는 格物致知나 『중용』에서 말하는 尊德性道問學 그리고 宋代에 나타나는 居敬窮理에서도, 사물의 이치를 밝히는 공부로서의 객관적 이법을 추구하는 태도가 언급된다. 그러나 ‘利用’은 여전히 ‘사물의 본성을 온전히 실현’하고, ‘사물의 실정을 따르는 일’로, 천지만물과 협조하고 공존하는 것이지 정복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런 점은 서양 근대의 자연에 대한 생각과 분명히 서로 다른 점이다.
수양을 강조하는 유교의 학문관은 자연과학의 발전을 저해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사실 순수한 자연과학은 실용성을 최고의 목적으로 하지 않고, 진리를 위한 진리이며 지식을 위한 지식이다. 이는 인간의 이성을 활용하여 세계를 설명해 내고 세계를 인식하는 것이다. 과학적 진리가 실용성을 갖고 있는가 하는 것은 이차적인 문제이다. 서양은 이 점에서 세계 그 어느 문명보다도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두었다.
서양이 과학을 발전시킨 원천으로 기독교를 거론할 수 있다. 기독교에 의하면 이 세계는 全知하고 全能하며 全善하신 하느님에 의해 창조되었다. 하느님이 보시기에 좋은 이 피조된 세계는 가치가 있으며, 하느님의 섭리가 內在되어 있다. 그리고 그 세계는 혼돈의 세계가 아니나 질서정연한 코스모스의 세계이다. 창조주인 하느님을 알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형상인 인간이, 하느님의 본질과 동일한 인간의 이성을 가지고, 이 세계를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파악하면 된다. 이런 생각이 서양의 과학을 발전시킨 원동력이었다.
물론 이런 기독교적인 근거 이외에 서양의 과학 발전은 더욱 소급하여 그리스 문명에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피타고라스가 추상적 수학 형식으로 사물 활동의 외재적 구조를 풀이한 것이 서양 최초의 1차 과학혁명이었다. 이는 서양 사람들이 처음으로 수학의 관점에서 물리적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플라톤은 피타고라스의 수학적 형식 개념을 근거로 ‘이데아설’을 발전시킴으로써, 세계를 둘로 나누게 되었고 이는 서양사상이 지향하는 외재 초월적 길을 더 확실히 정립시켰다. 플라톤은 세계의 질서와 규칙을 신이 안배한 결과라고 생각하였는데, 이는 바로 하나의 초월적 시각을 제공하며 사람들로 하여금 전체적으로 천지만물을 이해하도록 하였다. 그리스의 저명한 수학자이며 물리학자인 아르키메데스는 “나에게 충분히 긴 지렛대와 서 있을 자리를 주면 지구를 들어 올릴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외재 초월적 정신이 체계적 과학의 발전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은 아르키메데스의 이 말에 생동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런데 서양이 발전시킨 과학은 인류에게 이익만을 가져온 것이 아니라 커다란 문제점도 야기시켰다. 근대 초기에 경험적 지식을 중시하여 연역추리 보다는 귀납추리를 강조한 베이컨(F. Bacon)은 과학과 관련된 두 개의 몽상을 제기하였는데, 하나는 과학의 힘으로 우주를 정복하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과학 지식으로 세상의 참된 모습을 인식하는 것이었다. 후자는 기초과학 연구에 속하고, 전자는 기술 발전의 영역에 속한다. 베이컨이 참으로 흥미를 느꼈던 바는 과학기술을 이용하여 자연을 정복하고 통제하는 것이었다. 이른바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구호도 베이컨에서 기원한다. 그러므로 엄격하게 말해서 자연을 다루는 베이컨의 태도가 서양에서 말하는 현대화의 주요 내용 중 하나가 되었다. 이것은 기초과학 연구와 구별되어야만 한다.
그런데 베이컨이 중시한 ‘과학적 기술’은 세계를 정복하여 인간의 위대성을 극대화하였으나 그 기술은 자기 한계를 벗어나 인간을 통제하기에 까지 이르렀다. 이는 당시의 베이컨이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부작용이다. 인간은 이미 ‘과학적 기술’의 주인이 아니라 그것의 노예로 전락되었다.
서양 사상가들은 이미 여러 각도에서 이런 ‘과학적 기술’이 세계적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하이데거나 데리다 등에서 보이는 해체철학(deconstructive philosophy)은 이런 위기에 대한 서양 철학의 반성이라고 볼 수 있다. 해체철학은 지금까지 서양의 구성철학(constructive philosophy)이 인간의 지성과 의지의 노력으로 세상에 진리를 구성해서 세상을 구제하려는 것인데 반해, 인간이 세상에 진리를 쌓아 나가려는 생각을 해체하고 자연처럼 존재하면 이 세상은 이미 구제되어 있다고 깨닫는 철학이다. 서양의 현대 철학적 반성 이전에 동양의 지혜는, 서양의 근대 문명이 유발시킨 환경파괴에 일정 부문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환경 문제에 대해서는 불교와 노장 사상이 더 근본적인 처방을 제시할지 모르지만, 유교에도 좋은 대안의 싹이 없는 것이 아니다.
유교에 있어 인간과 자연의 차별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정복과 지배에 당위성을 부여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서구의 인간중심주의는 인간만이 內在的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자연은 이러한 인간의 내재적 가치 실현을 위한 하나의 도구나 수단에 불과한 도구적 가치만을 지닌다. 성경 창세기에 의하면 하나님은 모든 것을 창조하셨는데, 그 중에서 인간은 하나님의 모습대로 피조되었고, 자연을 지배할 수 있는 권한을 위임 받았다. 이런 인간중심주의적 사고는 종교뿐만 아니라 서양의 주류 철학의 입장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식물은 동물을 위해 존재한다. (---) 동물은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 가축이 식량이나 기타 용도로 존재하는 것처럼, 야생 동물도 그러하다. 즉 야생동물은 식량이나 다른 기타의 용도, 즉 의복이나 도구를 만드는데 사용할 수 있다. 자연은 일정한 목적이나 의도를 위한 것이라는 우리의 믿음이 타당하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인간을 위한 것임에 틀림없다."고 말하고 있다. 이런 사상은 중세의 토마스 아퀴나스와 근대의 데카르트 그리고 칸트에게까지 연결된다. 칸트도 자연을 존중하는 우리의 의무는 다른 인간에 대한 의무에서 도출되는 간접적인 의무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는 오직 대상과 수단이 아닌 주체와 목적만 도덕적 지위와 권리를 가진다고 보았다. 즉 자유롭고 이성적인 행위를 할 능력이 있는 자율적인 존재만이 도덕적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나 유학에서는 인간 도덕성의 근원을 하늘 즉 자연에서 찾는다. 우주적인 질서가 그대로 인간을 지배하고 있으며, 인간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仁과 義라는 덕목도 자연 세계 안에 그대로 들어 있다. 이로써 자연세계가 나와 더불어 한 몸이라고 하는 의식이 형성된다. 그리고 맹자가 말하는 금수와 달리 인간만이 선한 본성을 부여받았다거나, 주렴계나 왕양명이 주장하는 인간만이 가장 빼어난 氣를 품수 받아 靈明하다는 것은, 결코 서구의 인간중심주의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래서 서구처럼 인간에게 자연을 정복·지배·착취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맹자의 ‘盡心, 至誠, 知天’, ‘親親. 人民 愛物 ’이나, 중용의 ‘盡其心의 至誠을 통한 盡物之性’과 ‘參天地之化育’, 그리고 왕양명의 ‘惻隱之心.不忍之心. 憫恤之心. 顧惜之心’을 통해, 천지만물일체를 실현해야 하는 도덕적 사명을 의미한다. 인간만이 지니고 있는 도덕성과 가치는 결국 자연의 生意를 잘 살려주고, 천지의 만물화육에 동참해야 하는 근거가 된다. 인간은 愛物, 盡物之性, 事天, 參天地之化育을 통해서만 이러한 도덕성을 실현하고, 하늘(자연)과 더불어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유교가 가장 중요하게 추구하는 ‘天人合一’, ‘人與天地萬物一體’ 사상이다. 이런 사상은 현대 서구 사회가 당면한 문명의 위기를 해결하는데 하나의 나침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6) 베버(Max Weber)는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전통 유교 윤리는 두 가지 결함 때문에 유교는 자본주의의 정신이 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그 중 하나는 유교사상에 젖은 사람들은 주어진 환경에 잘 적응하지만 그 환경을 변화시키는 일엔 서툴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인격자나 인간관계를 중시한 나머지 전문능력이나 기능을 중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君子不器라는 생각이 자본주의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유교에서 추구하는 이상적 인간상인 군자는 자본주의 발전에 전혀 기여하는 바가 없을까?
베버는 16~17세기로부터 18세기에 걸쳐서 영국이나 미국 그리고 서유럽에서 합리적인 가격 메커니즘 혹은 정상 가격 시스템 속에서 이루어지는 시장 기구를 구축하여 그것을 토대로 해서 합리적인 산업 경영과 그 노동 조직을 수립하는 방향으로 사람들의 사고나 행동을 추동시키고 있었던 에토스를 ‘자본주의의 정신(Geist des Kapitalismus)’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런 자본주의의 정신은 칼뱅파나 침례파 계통의 금욕적인 프로테스탄티즘의 종교적 에토스로부터 유래했다고 보고, 그 양자 간에 발생사적인 연결을 학문적으로 논증하려고 하였다.
베버는 자본주의 정신의 담당자를 자본가 혹은 기업가로 한정시키지 않고, 노동자 혹은 임금 노동자 그리고 소생산자(상품 생산자로서의 농민이나 직인)들을 아울러 포함시켰다. 그리고 ‘자본주의의 정신’의 본질을 영리욕이나 최대한의 이윤 추구가 아니고, 근대 자본주의, 특히 그 토대를 구성하는 산업 경영과 그 합리적 조직을 제일 먼저 만들어 낸 사람들이 자본가, 노동자를 막론하고 모두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하나의 특유한 에토스, 즉 合理主義的 에토스라고 말한다. 이 점에서 그는 독일의 사회학자 좀바르트(Werner Sombart)와는 다르다. 좀바르트는 ?현대자본주의Der moderne Kapitalismus?에서 중세의 권위주의 사상이 붕괴되고 인생관이 세속화되면서 의식이 영원한 것에서 현세적인 것으로 바꿨다고 생각한다. 이런 의식을 그는 파우스트적 의식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스펭글러(Oswald Spengler)의 표현에 따르면 ‘멀리 그리고 드높이 날고자 하는 삶의 감정이 분명히 괴테의 파우스트 독백이 증기 기관차의 청춘 속에 표현하고 있는 감정이다. 끝을 모르고 술취한 영혼은 시간과 공간을 한없이 날고 싶어한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향수가 술취한 영혼을 끝없이 멀고 먼 세계로 밀어내’는 의식이다. 좀바르트는 파우스트처럼 인간이 하고자 하면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근대인의 의식이 시장 제도와 결부되어 경제 제도의 변혁이 일어나고, 이것은 전통적인 수요 충족의 제도를 영리 추구의 제도로 변화시켜 자본주의 사회를 가져왔다고 진단한다. 이 점에 반해 베버는 영리 추구가 자본주의와 동시에 잉태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즉 인류에게 저주스런 황금욕(영리 추구)은 태고적으로부터 있어 왔기 때문에 그것이 자본주의를 잉태시킨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다. 그러므로 근대 자본주의의 원인은 단순한 영리 추구가 아니라 철두철미하게 합리적인 영리 추구라는 것이다.
그러면 먼저 자본주의의 정신의 담당자가 노동자인 경우를 생각해 보자. 베버는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슐레지엔의 농업 노동자를 예로 든다. 공업 경영과 농업 경영은 어느 시기에 집중적인 노동이 필요하기 때문에 노동의 집약도를 높이기도 하고 시간을 연장하기도 한다. 농업 노동의 경우에는 농산물 수확기가 그 경우이다. 일정 기간 동안에 수확물을 모두 거두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럴 때 기업가가 취하는 전형적인 방법은 높은 임금을 지불하는 방법이다. 왜냐하면 임금이 인상되면 노동자들은 심리적인 자극을 받아 노동 생산성을 높이고 오랜 시간 노동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이 그 당시 영국에서는 성공적이었다. 그런데 슐레지엔의 농장에서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났다.
예를 들어 임금의 실질 수입이 2배로 증가하면 슐레지엔 노동자들은 열심히 일하기보다는 2일 중 하루를 쉰다. 일정한 수입을 확보하면 그 다음에는 쉬는 것이다. 그러면 그들의 사고와 행동이 왜 영국의 노동자들과 다른가? 베버는 그들의 윤리 관념이 영국인들과 다르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즉 그들은 ‘傳統主義’라는 에토스를 가졌기 때문이다. 전통주의란 선조나 부모들이 그렇게 살아왔으며 자신들도 지금까지 줄곧 그렇게 살아온 양태를 과거에도 있었고 또는 과거에도 행해 왔다는 이유만으로 장래의 자신의 행동 기준으로 삼으려는 윤리를 말한다. 베버는 이것을 괴테의 ‘영원한 여성적인 것’이라는 말을 이용하여 ‘영원한 어제적인 것(das ewig Gestrige)’이라고 풍자한다.
이런 전통주의의 에토스를 몸에 익힌 노동자는 만약 임금이 2배로 증가하면 지금까지의 생활비의 2일분이 들어오기 때문에 다음날 쉬게 된다. 전통적으로 필요한 것 이상을 탐내지 않는 것이 선한 일이기 때문이다. 만약 어떤 노동자가 임금 인상에 따라 더욱 열심히 일하게 된다면, 그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며 좋지 않은 노예 근성의 소유자로 취급될 것이다. 그러나 당시의 영국 노동자들은 이와 반대로 도덕적으로 성실하면 임금 인상에 응하여 척척 일하고, 도덕적으로 단정하지 못하면 다음날 쉬게 된다.
베버의 견해에 따르면 노동자의 대부분이 이러한 전통주의에 따라 살아간다면, 근대의 합리적 산업 경영은 발달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산업 경영이란 합리적인 예측과 계획 위에 수립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노동자의 출결이 일정하지 않다면 합리적인 예측은 어려워지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갈 것이다
베버는 또 노동자에게서 보여지는 전통주의적 분위기를 설명하기 위하여 공업 조사의 사례도 열거하고 있다. 독일 어느 지방의 노동자, 특히 여성 노동자들은 새로운 노동 양식이나 도구 혹은 기계를 노동 과정에 도입할 경우 거기에 잘 적응하지 못한다. 이와는 반대로 영국 노동자의 주요 부분은 중세 말기부터 18세기에 이르기까지 오랜 세월에 걸쳐서 합리적 산업 경영 건설에 좋은 촉진제가 되는 에토스를 이미 일반적으로 몸에 익혀 왔다. 따라서 베버는 바로 이 에토스를 ‘자본주의의 정신’이라고 부른 것이다.
다음으로 자본주의의 정신의 담당자가 자본가인 경우를 생각해 보자. 베버는 영국이나 미국, 한층 더 넓게는 서유럽 국가들에서처럼, 역사적으로 근대에 들어서서 합리적인 산업 경영을 토대로 하는 자본주의 경제가 자생적으로 자신의 내부로부터 형성되는 나라의 경우에는 봉건 사회가 붕괴되면서 공업 생산자들이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그 공업 생산자들이 도시 지역으로부터 농촌 지대로 점차 이동해 간다. 이것이 이른바 중산적 생산자층이다. 그 중산적 생산자층의 상층부가 자본가 내지 산업 기업가의 중추 부분을 형성한다. 그리고 나머지 부분이 임금 노동자의 중추 부분을 형성하게 된다. 이렇게 형성된 자본가나 산업 기업가들은 옛부터 존재해 왔던 상인이나 금융업자들에 대항하고 타도하면서 성장해 갔다.
중산적 생산자층은 기존의 상인이나 금융업자들과는 달리 수중에 축적되어 있는 자금을 투기적인 상업에 투자하지 않고 견실한 산업 경영에 계속적으로 투자했다. ?로빈슨 크루소 표류기?의 로빈슨이 젊은 시절 투기적인 상업에 의한 이윤에 반대하는 부친의 훈계를 듣지 않고 해외로 진출했다는 이야기가 상징하듯이, 18세기에 들어와서도 중산적 생산자층에 속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아직도 그러한 투기적인 무역에 투자하여 일확천금을 쥐고 싶은 유혹에 끊임없이 시달렸다. 이러한 유혹을 떨쳐버리고 그저 적정 이윤만 있어도 또는 그보다 이윤이 더 적더라도 자금을 산업 투자로 돌리는 방향으로 그들을 내면으로 추동시킨 에토스가, 베버가 생각하는 ‘자본주의의 정신’인 것이다. 그러므로 베버에 따르면 중소 산업 경영자, 즉 소경영자들이 자본주의의 정신의 최초의 담당자였기 때문에, 자본주의의 정신은 곧바로 자본가를 담당자로하는 정신이라기보다는 소부르주아적인 소경영자들을 충동질하는 정신으로 보아야 한다. 그것은 탐욕의 정신이 아니라 世俗的禁慾의 정신이다.
베버는 자본주의 정신의 화신으로 프랭크린(Benjamin Franklin)을 든다. 그러면 자본주의에서 요구되는 프랭크린 같은 인물과 군자는 어떤 점에서 유사하고 어떤 점에서 차이가 나는 것일까?
프랭크린이 완전한 인격체가 되기 위해 중시하고 오래 동안 실천한 덕목이 13가지가 있다. 그 덕목과 거기에 따른 규율은 다음과 같다.
1. 절제(Temperance) : 배부르도록 먹지 말라. 취하도록 마시지 말라.
2. 침묵(Silence): 자신이나 남에게 유익하지 않은 말은 하지 말라. 쓸데없는 말은 피하라.
3. 질서(Order): 모든 물건을 제자리에 정돈하라. 모든 일은 시간을 정해 놓고 하라.
4. 결단(Resolution): 해야 할 일은 하기로 결심하라. 결심한 것은 꼭 이행하라.
5. 절약(Frugality): 자신과 다른 이들에게 유익한 일 외에는 돈을 쓰지 말라. 즉 아무 것도 낭비하지 말라.
6. 근면(Industry): 시간을 허비하지 말라. 언제나 유용한 일을 하라. 안 해도 될 행동은 끊어 버려라.
7. 진실(Sincerity): 남을 일부러 속이려 하지 말라. 순수하고 정당하게 생각하라. 말과 행동을 일치하게 하라.
8. 정의(Justice):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응당 돌아갈 이익을 주지 않거나 하지 말라.
9. 중용(Moderation): 극단을 피하라. 상대방이 나쁘다고 생각되더라도 홧김에 상처를 주는 일을 삼가라.
10. 청결(Cleanliness): 몸과 의복, 습관상의 모든 것을 불결하게 하지 말라.
11. 평정(Tranquility): 사소한 일, 일상적인 일이나 불가피한 일에 흔들리지 말라.
12. 순결(Chastity): 건강이나 자손 때문이 아니라면 성 관계를 피하라. 감각이 둔해지거나 몸이 약해지거나, 자신과 다른 이의 평화와 평판에 해가 될 정도까지 하지 말라.
13. 겸손(Humility): 예수와 소크라테스를 본받으라.
프랭크린이 절제, 절약, 근면, 진실, 중용 등의 덕목을 강조한 것은 유교에서 강조하는 군자의 덕목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이런 외양적인 유사점에도 불구하고 양자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우선 프랭크린의 덕목들은 철저하게 효과를 위한 덕목인 반면에 유교의 덕목들은 일종의 심정을 위한 것이다. 프랭크린은 덕은 사람에게 이익을 주고, 악덕은 폐해를 준다고 확신한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행복하고자 하는 사람은 덕스러워지는 것이 이익이다. 그는 젊은이들에게, 성실함과 청렴이야말로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의 성공을 확실히 보장하는 자산이라고 훈계한다. 그는 인쇄소를 차렸을 때 상인으로서의 신용과 평판을 생각해서 부지런하고 검소하게 생활했고 또 그렇게 보이도록 외양에도 신경을 썼다고 고백하고 있다. 심지어 인쇄소 일이라면 뭐든지 한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 가게에서 산 종이뭉치를 손수레에 싣고 골목길을 끌면서 집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근본적으로 프랭크린에게 있어서 덕은 이익과 성공이라는 효과를 가져오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는 79세에 자신의 인생을 회고하면서 덕들의 효용성을 정리한다. “ ‘절제’의 덕으로 나는 일생을 건강하게 살았고 지금도 건강한 몸을 유지하고 있다. ‘근면’과 ‘절약’ 덕으로 젊은 시절의 어려운 환경을 쉽게 이겨냈고 재산도 모았다. 거기에 많은 지식까지 겸비하여 쓸모 있는 시민이 되었고 지신인들 사이에서 꽤 괜찮은 평판도 얻었다. ‘진실’과 ‘정의’ 덕으로 나라의 신뢰를 얻어 명예로운 직책을 맡았다. 또 원하는 만큼 완전히 습득하지는 못했어도 이 많은 덕목들의 일치된 힘으로 항상 침착할 수 있었고 기분 좋은 대화를 할 줄 알았다.”
이에 반해 유교의 덕목은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다. 공자는 ‘이익을 보면 그것이 의로운가를 생각하라’고 가르친다. 그리고 이익만을 쫓는 자를 소인이라고 질책한다. 그는 제자 중에 顔回를 사랑했다. 그 이유는 안회가 仁者 즉 군자의 모범을 보였기 때문이다. “어질다 회여! 한 그릇의 밥과 한 바가지의 물을 먹으면서 누추한 집에 살게 된다면 다른 사람들은 그 불편함을 견디지 못하겠지만, 회는 그렇게 살면서도 그 생활의 즐거움이 변하지 않으니 참으로 어질다 회여!”
누추한 집에 산다는 것은 경제적으로 곤궁하다는 말이다. 그런 경우 프랭크린이라면 그 곤궁함에 안주하지 말고 열심히 일해서 부자가 되라고 책망할 것이다. 그런데 공자는 가난을 벗어날 수 있는 실질적인 방법을 보여주기 보다는, 곤궁 속에서도 도덕적 덕성을 잃지 말라고 당부한다. “인하지 못한 사람은 곤궁 속에서 오래 견디지 못하고 즐거움 속에서도 오래 즐기지 못한다. (…) 오직 인한 사람만이 사람을 진심으로 좋아할 수 있고 진정으로 미워할 수도 있다.”
둘째로, 프랭크린의 덕목들은 합리성의 표현인 반면 유교 덕목들은 인의 실현이라는 점이다. 베버에 따르면 근대 서구 사회의 주요한 특징은 합리화이다. 근대 사회를 특징짓는 이 합리화는 목적합리적(zweckrational) 행위라는 영역의 확대에 의하여 표현되고 있다. 경제적 기업이 합리적이고, 관료제에 의한 국가의 관리가 합리적이며, 전체로서의 사회가 목적합리적 조직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베버는 네 가지 행위의 유형을 구분했다. 첫째, 목적에 관계된 합리적 행위(목적합리적 행위)로서, 이것은 다리를 건설하는 기사, 증권 거래소에서 돈을 벌려고 노력하는 투기자, 승리하기를 원하는 장군의 행위이다. 이 행위는 행위자가 그 목적을 명백히 하고 그것을 달성하려는 수단과 결부시키는 행위이다.
둘째, 가치에 관계된 합리적 행위(가치합리적 행위)는 자기의 배와 함께 침몰하는 용감한 선장의 행위이다. 그 행위가 합리적인 것은 그것이 어떤 일정한 외적 목적을 달성하려고 하기 때문이 아니라, 침몰하는 자기 배를 포기하는 것은 불명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행위자가 이 모든 위험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외적인 결과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다. 바로 명예라는 가치에 충실하기 위해서이다.
셋째, 감정적 행위는 이를테면 축구 경기에서 한 선수가 자제력을 잃고 주먹질을 하는 것과 같이, 어느 주어진 상황에 놓여진 행위자가 감정적인 반작용을 하는 행위이다. 마지막으로, 전통적 행위는 관습, 습관과 제2의 천성이 되어 버린 신념에 의해서 움직이는 행위이다. 그러므로 이런 전통적 행위자는 그가 익혀온 조건 반사와 같은 행위에 단순히 따를 뿐이다.
시간과 신용도 모두 돈이라고 생각한 프랭클린은 근면과 절약이라는 덕성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그는 오로지 열심히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될 수 있는 대로 쓸데없는 낭비를 억제하고 저축을 다시 투자로 돌려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또한 신중(prudence)이나 주도면밀(circumspection)이라는 덕성을 중시한다. 즉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의 선택이나 그 실천의 순서가 因果 관계에 대한 잘못된 인식 위에 세워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정신 속에 포함되어 있는 이 목적합리적인 의식이 강력한 가치합리적 의식의 도움을 받아, 중산적 생산자층에 속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전통주의와 그것에 얽혀 있는 여러 가지 습관을 버리도록 만들었다. 그리하여 그들을 근대의 합리적 산업 경영의 건설에 적합한 사고방식과 행동 양식을 몸에 익히게 되었다.
그런데 유교의 덕목들은 농경 사회를 배경으로 해서 태동하였다. 경제적 이득을 추구하는 상업이나 산업 그리고 거대한 조직의 경영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 합리적 정신이 제일 중요하게 요구될 필요가 없었다. 이것은 유교의 중심 윤리인 五倫五常의 도를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군신, 부자, 부부, 형제, 붕우가 오륜이고 인, 의, 예, 지, 신이 오상이다. 사람간의 기본 질서인 오륜에는 생산품의 공급자와 소비자의 관계가 들어 있지 않다. 오상에도 프랭크린이 그렇게 관심을 쏟았던 실용의 덕목들이 보이지 않는다.
셋째로, 프랭크린의 덕목들은 神을 전제로 하는 반면에 유교의 덕목은 內向的이라는 점이다. 프랭크린은 성경의 모든 내용들을 그대로 믿지는 않았지만, “신이 존재한다는 것, 신이 세상을 창조했고 섭리로 주관하고 있다는 것, 신이 가장 기뻐하는 봉사는 사람들에게 선을 베푸는 일이라는 것, 우리의 영혼은 불멸하며 모든 악은 단죄 받고야 만다는 것, 덕행은 이 세상에서든 저 세상에서든 꼭 보답을 받는다는 것” 등은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다고 고백한다.
이런 신앙을 가진 사업가는 어떻게 생활을 해야 할까? 베버에 의하면 대답은 간단하다.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일을 한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베버는 자본주의의 정신과 기독교 신학 중에 특히 칼뱅 사상을 연결시켰다. 베버에 따르면 칼뱅주의자는 자기가 구원을 받게 될 것인지 영원한 저주 속에 들어갈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이러한 결론은 결국 사람을 견딜 수 없게 만든다. 따라서 논리적이 아니고 심리적인 성향에 따라 칼뱅주의자는, 이 세계에서 자기가 하나님으로부터 택함을 받았다는 징조를 찾게 된다. 베버는 바로 이 성향 때문에 어떤 칼뱅주의 종파는 결국 이 세상에 있어서의 성공, 심지어 경제적 성공 속에서 택함을 받았다는 증표를 발견하기 위하여 노력했다고 주장한다. 즉 개인들은 자기의 영원한 定命에 관한 불확실성의 필연적 결과로 나오는 불안을 극복하기 위하여, 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런 해석에 따르면 프랭크린이 자기 일에 보였던 합리적이고, 규칙적이며, 성실한 태도는 신의 召命에 대한 복종이 된다.
프랭크린 같이 자본주의를 자생적으로 발전시킨 서구의 중산적 생산자층은 두 개의 중심을 갖게 된다. 하나는 세속적 모습을 지닌 이웃 사랑 그리고 그 실천을 위해 헌신하고자 하는 태도, 즉 세속적 금욕이 바로 그것이다. 다른 하나는 중산적 생산자층의 세속적 삶이 시장 경제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그들이 과연 전심전력으로 이웃을 사랑하여 이웃에게 공헌했느냐 안 했느냐의 여부는 시장에서 결정된다는 것이다. 즉 기업 생산자인 그들이 이웃에게 공헌하기 위한 길은, 좋은 상품을 생산하여 이웃이 필요한 시기에 싸게 공급하는 일이다. 그래서 시장에서 많은 수요자가 그 상품을 산다면 생산자는 그만큼 이웃에게 공헌한 셈이 된다. 그 결과로 생산자는 이윤을 많이 남기게 된다. 그러면 이제 이윤을 남겼느냐 남기지 않았느냐 하는 문제는 이웃 사랑을 재는 척도가 된다. 이윤을 얻는 일은 善한 일이고, 이윤 추구에 적극적인 윤리적 의미가 부여된 셈이다. 이처럼 자본주의의 정신에는 일 자체에 대한 전심전력, 그리고 이윤 획득이라는 두 개의 중심이 포함되어 있다. 초기 자본주의의 정신의 담당자들에게 있어서는, 그리고 또한 『국부론』을 쓴 아담 스미스(Adam Smith)에게 있어서는 이 두 개가 교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유교의 윤리는 외향적인 절대자를 위한 것이 아니다. 내면적 덕성의 완성이 목표였다. 물론 유교에서도 도덕의 근원을 帝 또는 天에 귀의시켰다. 이른바 “부지불식간에 帝의 법칙을 따른다”, “天이 백성을 낳으니 사물이 있으면 법칙이 있다”는 말은 모두 이러한 생각의 표현이다. 공자도 仁의 원천을 天에 두고 있지만, 공자 시대부터는 인간의 비중이 중요해지고 상대적으로 하늘의 비중은 경감되었다. “선생님께서 性과 천도에 관해 말씀하시는 것을 들어 본 적이 없다.”는 것이 그 점을 반영한다. 인간의 본성이 하늘로 왔다고 분명히 단언한 것은 『중용』이다. “하늘이 명한 것을 일러 본성이라 한다. 이 본성을 따르는 것을 도라고 한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天에서 온 본성을 온전히 실현할 수 있을까? 맹자는 “그 마음을 다하는 자는 그 본성을 알 수 있고, 본성을 알면 하늘을 알게 된다.”고 말하였다. 이는 목표를 추구하는 방식이 내향적 초월의 길로 들어선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서구에서 말하는 외재적 초월과는 분명한 대조를 이룬다. 공자의 “자기 자신부터 仁하게 하라.” 라는 말에는 이미 이러한 내향적 초월의 방향이 제시되어 있지만, 맹자는 특별히 ’마음‘을 강조하여 보다 구체화한 것이다. 내향적 초월은 필연적으로 각 개인 스스로의 일이기 때문에 조직화된 교회에 의지하지 않고, 체계화된 교리에 따르지 않으며, 심지어는 상징적 儀式 또한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된다. 동양에는 서양 기독교식의 사제가 없다. 유교는 사람에게 ‘깊이 自得할 것’과 ‘귀의하여 추구하는 것에 스승이 있다’고 가르친다. 이 모든 핵심은 확실히 개인의 내면적 자각에 있다. 따라서 개인의 수양 혹은 수도가 관건이 되는 것이다. 만약 동양문화에 ‘인문주의 정신’이 있다고 한다면 이것이 바로 그 구체적 표현이다.
이런 점으로 볼 때 프랭크린이 인생의 지침으로 삼은 덕과 유교가 강조한 덕은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그러면 과연 베버가 예측한 대로 유교의 가치와 정신은 자본주의의 발전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없을까?
베버는 자본주의의 초창기의 발생을 아름답게 묘사하지만 자본주의의 미래에 대해서는 비관적으로 전망한다. 자본주의를 가져왔던 초창기 주역들인 중산적 생산자층들은 이웃 사랑과 세속적 이윤추구라는 두 개의 중심축을 조화시켰다. 그러나 그 후 ‘神과 富를 함께 섬길 수 없다’는 신약 성서의 말처럼, 돈을 버는 일과 이웃 사랑은 점점 遊離되어 갔다. 무엇보다도 신의 선택에 대한 확신을 얻고자 하는 열성이 본래 세속적 금욕을 지탱하고 있었는데, 어느 사이에 그 종교적 열정은 힘을 잃어 갔다. 그 대신 이윤을 추구하고자 하는 열정이 점차 힘을 지니게 되었다. 그리하여 처음에는 양자의 힘이 팽팽한 균형 상태를 이루고 있다가, 이윤 추구에 열중하는 힘이 전면에 나타나게 되면서, 세속적 금욕은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로부터 이탈하여, 오히려 영리 자체를 위하는 것이 되었다. 이리하여 세속적 금욕을 중핵으로 삼으면서도, 영리 자체가 자기 목적이 되어버린 에토스가 생기게 되었다. 바로 이것이 자본주의의 정신인데, 18세기 영국에서 이 에토스가 자본주의 경제의 발달을 내면으로부터 촉진시켜 급기야 산업 혁명이 일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산업 혁명은 중산적 생산자층, 특히 그 부유한 상층부가 중심이 되어 추진되었다. 그러나 산업 혁명이 완료될 당시에는 영국의 중산적 생산자층은 크게 자본가와 임금 노동자라는 양극으로 분해되어 기본적으로는 역사의 무대로부터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그리고 자본주의의 정신도 사라지게 되었다. 왜냐하면 이미 확립된 자본주의 경제의 사회적 기구는 사람들의 행동을 내면으로부터 추동시키는 자본주의의 정신의 도움 없이도, 그 스스로가 결국 기아라는 채찍으로, 원래 세속적 금욕을 발생시킨 것과 동일한 금욕적 행동 양식을 외부로부터 사람들에게 강제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자본주의의 경제에 있어서는 내적인 윤리 같은 것이 필요 없게 된다. 결국 자본주의의 정신은 그 존립의 사회적 발판을 상실하게 된다. 자본주의 정신이 사라진 다음의 정신적 상황을 베버는 우울하게 그리고 있다. “外的 財에 관한 배려는 ‘언제나 벗어버릴 수 있는 엷은 외투’와 같이 聖徒들의 어깨에 걸쳐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운명은 이 외투를 철과 같은 殼으로 변하게 했다. 금욕은 세속을 개조하고 그 세속의 내부에서 성과를 올리려고 꾀하였으나, 그 때문에 오히려 物的 財는 역사상 이제까지 어떤 시대에서도 볼 수 없으리만큼 증대하여, 드디어는 인간 위에 거리낌 없는 위력을 떨치게 되었다. 오늘날 이 같은 금욕의 정신은 이 外殼에서 사라져버렸다. (---) 영구인가 아닌가, 그에 관하여 누가 알랴? 그러나 승리에 빛나는 자본주의는, 기계적 기초 위에 安住한 이래로 그 같은 금욕의 지원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된 것이다. 금욕의 상속인인 미소를 띤 계몽주의의 장미색 정신은 모두 퇴색하여 그 젊음을 상실한 듯하고, ‘직업책무’의 이념은 지난날의 종교적 신앙의 亡靈으로서 우리의 생활 속을 방황하고 있다.”
이렇게 말한 베버는 장차 누가 이 철각(쇠우리) 속에서 살게 될까 하는 물음을 던지면서 다시 한 번 장래에 대한 전망을 시도한다. 자본주의의 거대한 발전이 끝날 때 어떻게 될 것인가? 그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경우가 가능하다고 전망한다. 하나는 새로운 예언자가 나타나 우리들이 가야 할 한층 더 옳은 길을 제시해 주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바람직한 길인지 모른다. 또 하나의 가능성은 이전의 사상이나 이상이 강력하게 부활하는 길이다. 이것은 당장은 좋은 결과를 가져올지 모르지만 어떤 점에서 상당한 위험을 내포한 길이다. 제3의 가능성은, 오늘날처럼 계속 이 철각이 점점 더 강화되어 간다면 일종의 기괴한 기계적 화석화가 일어나는 길이다. 결국 자본주의라는 철각이 거대한 자동기계로 변해 버리는 그러한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베버가 우울하게 묘사하는 자본주의 속에서, 초기의 이웃에 대한 사랑의 정신은 사라지고 탐욕스러운 이윤추구에 혈안이 되어 행동하는 자본가가 중심이 되는 사회에서, 유교의 가치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보스턴 대학의 일부 기독교 학자들은 유학이 미국에서 의미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세 가지 이유를 제시한다. “첫째, 인간을 네트워크의 중심점에 놓는 것이 인간을 아무런 인연도 없는 고립 무원한 개체로 간주하는 것보다 더 가치 있다는 것인데, 이러한 관념은 미국 사회에서 훌륭한 인도자 역할을 할 것이다. 둘째, 유학 전통 가운데 仁道는 경쟁이 특히 강하고 인정이 특히 희박한 시장경제에 충분한 조절작용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팽팽한 힘의 균형을 이루고 있는 서양 사회에 법률이 복잡한 상화작용을 보장하고 있기는 하지만, 만일 책임감과 동정심이 없이 법률에만 의지한다면 이는 장기적으로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방법이 되지 못한다. 이와 관련하여 유학의 책임윤리와 예의정신은 충분히 받아들여 참조할 만한 가치가 있다.”
현대 지본주의는 극단적인 개인주의, 탐욕적인 이윤 추구, 불공정한 경쟁, 법 만능주의에 의한 과도한 소송 등의 惡性을 노출하고 있다. 유학이 가지고 있는 장점으로 자본주의의 폐단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는 점은 유학에게는 상당히 고무적인 격려이다. 이런 문제와 관련하여 앞에서 논한 유학의 이상적인 인간상인 군자를 새롭게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7) 앞에서 보았듯이, 베버는 유학에서 추구하는 군자는 교양인이기 때문에 전문적인 지식을 요하는 자본주의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비판한다. 물론 군자의 정체는 인격자이다. 仁이라는 내적 소질과 그것이 삶의 태도로서 확립된 높은 도덕적 人品을 갖춘 존재이다. 베버의 지적대로 냉정한 전문적인 지식만을 가진 그런 테크노크라트(technocrat)는 아니다. 테크노크라트는 과학적 지식이나 전문적 기술을 소유함으로써 사회 또는 조직의 의사결정에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을 말한다. 그런 모습은 군자와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높은 인격적 측면 이외에 군자에게서 발견되는 놀라운 새로운 국면들이 있다.
그것은 우선 군자는 유연한 사고를 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논어』에는 “군자는 천하의 일에 대하여 절대로 그래야 한다거나 절대로 안 된다고 미리 단정하지 않고, 다만 의로움을 좇는다.”라는 구절이 있다. 또 공자가 하지 않는 네 가지 일로 “자의적 태도와 기필코 하고 말겠다는 태도와 고집스러움과 자신만을 생각하는 태도”를 들기도 한다.
군자에게서 보이는 이런 태도는 매우 의미가 있다. 군자는 현실에 대해서 단순하고 성급하게 예, 아니오 둘 중 하나로 답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는 현실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않는 이런 비지성적인 單價的 논리를 배격한다. 모호한 것이 불안하다고하여 조급하게 불완전하고 안이한 기존의 것으로 탈출하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그 속에서 여유를 가지고 兩價的 논리로 모든 측면들을 비판적으로 점검한다. 그래서 더 나은 해결책을 모색한다. 공자는 이런 태도를 도덕적인 측면에서 다루고 있다. 그런데 군자가 갖는 이런 유연한 사고를 도덕을 벗어나서 외연을 확대시킬 필요가 있다. 세상을 외곬으로 바라보는 꽉 막힌 군자가 아니고 유연한 사고를 하는 군자라면, 현실의 문제에 있어서도 시대 상황에 적중한 해답을 모색할 것이다. 그러므로 앞의 공자의 말에서 ‘의로움을 좇는다’라는 구절을 변형해서 ‘진리를 좇는다’라고 置換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군자는 상식 세계의 편견에 빠져 무조건 긍정하거나 무조건 부정하는 黑白論理的 태도를 극복하게 된다. 이런 사고는 곧바로 創意的 사고와 연결된다. 창의적 연구에서 주목할 만한 학자인 알버트 로덴버그(Albert Rothenberg)는 그가 ‘야누스의 사고(janusian thinking)’라고 이름 붙인 프로세스를 착안했다. 로마신화에 門의 수호신으로 등장하는 야누스는 다른 방향을 바라보는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야누스의 사고에서는 두 개 또는 그 이상의 반대나 대조되는 사고가, 동시에 일어나고, 나란히 존재하거나, 동등하게 작용하며, 함께 유효하고, 함께 진실이 된다. 그래서 야누스의 사고란 두 개 이상의 대립적인 개념이나 아이디어나 이미지를 동시에 이해하고 이용할 수 있는 사고이다. 이것을 굳이 도식적으로 말한다면 ‘이것 혹은 저것 둘 중의 하나(either A or B)'의 논리가 아니고 ’이것 그리고 저것 그러나 또 다른(both A and B, but)‘의 논리라고 할 수 있다. 로덴버그 박사는 아인슈타인, 모차르트, 피카소, 콘래드의 작품에서 야누스의 사고의 흔적을 확인했다. 야누스의 사고를 사용하는 방법은 ‘이것의 반대는 무엇인가?’를 묻는 것이고 동시에 존재하는 반대의 것들을 상상하는 것이다. 이렇게 이질적인 요소에서 나온 통합된 이미지가 우수한 창의적 아이디어를 자극시킬 수 있다. 이런 창의적 사고는 국가는 물론 토인비가 말하듯이 문명의 발전에 핵심적인 요소이다.
다음으로 우리가 군자의 모습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인격수양이라는 修身의 측면 못지않게 安人이나 治人이라는 측면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베버는 유교에는 ‘자연법이 부재하고 법규의 공식 논리가 없다’고 비판했다. 사실 유교의 정치 원리의 핵심은 法治가 아니고 德治임에는 틀림없다. 공자는 오직 덕 있는 사람이 국민을 도덕으로 교화하고, 예로써 국민을 이끌어서, 자연스런 질서회복을 도모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법령으로 이끌고 형벌로 국민을 일체화하면, 국민들은 법망을 벗어나려고만 하고 부끄러움이 없다. 그러나 덕으로 이끌고 예로써 일체화시키면 부끄러움을 느끼고 또한 선하게 된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을 보라. 그는 세계 최강의 나라 대통령이면서도 오직 피도 눈물도 없는 사업가처럼 개인과 미국의 이익만 추구한다.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조롱한다. 그러니 그의 말에 진심으로 감동을 받아 자발적으로 그의 말에 따라 행동하려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사회의 지도자는 먼저 덕을 갖추어야 한다. 그 연후에, 계곡의 난초가 그윽한 향기를 내어 온 계곡을 향기롭게 하듯이, 그 덕으로 백성을 감화시켜야 한다. 군자가 덕을 기르는 직접적인 목적은 자기의 완성이지 백성을 교화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그는 백성을 위하여 살아야만 한다. 君子가 志向하는 것이 知命이라고 할 때, 자기의 명은 결국 타인과 연결될 수밖에 없다. 자기가 마땅히 해야 할 바를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 결국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니고서는 무의미해질 것이고, 또한 그 노력이 온전해질 리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공자도 이미 이 점을 중시했다. “자로가 군자에 대해 묻자 공자는 대답하였다. ‘군자는 자기를 닦음으로써 삼가는 사람이다.’ 그러자 자로가 다시 물었다. ‘그것뿐입니까?’ 그러자 다시 공자는 대답하였다. ‘군자는 자기를 닦음으로써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사람이다.’ 이에 자로가 다시 한 번 물었다. ‘거듭 그것뿐입니까?’ 그러자 공자는 ‘군자는 자기를 닦음으로써 온 백성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사람이다. 자기를 닦음으로써 온 백성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일은 요 임금이나 순 임금도 하기 어려웠던 일이다’고 대답하였다.”
그러므로 이제 현대의 군자는 수기 못지않게 안인에 강조를 두어야 한다. 이것은 마치 불교에 비유하자면 소승불교에서 대승불교로의 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소승불교는 자기 해탈 즉 上求菩提가 더욱 중요하다고 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대승불교는 자기의 깨달음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것에 안주해서는 진정한 종교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남을 위한 下化衆生을 더욱 염두에 두는 菩薩을 최고의 인간상으로 제시한다.
원래 유교는 자기 수양적인 修己와 대인적 완성이라고 하는 治人의 내외 합일성 즉 內聖成德과 外王事功의 학문이었다. 그런데 과거의 유교가 내성성덕을 강조하였다면 이제 금세기의 유교는 적극적으로 외왕사공에 중점을 두고, 그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개발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大學』에서 말하는 格物, 致知, 誠意, 正心, 修身. 齊家, 治國, 平天下 중에서, 이제 제가와 치국 그리고 평천하하는 덕목에 더욱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길이, 서양 문명과 충동하는 현재의 시점에서, 유교가 나아가야 할 중대하고 시급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바로 군자의 본질을 다시 정립하는 일이 될 것이다.
(8) 아시아적 가치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측면에서 다양하고 복잡한 얼굴로 나타난다. 그래서 이런 가치들에 대해서 상반된 평가가 공존한다. 또한 동일한 사람이 아시아적 가치의 어느 측면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하고 다른 측면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싱가포르의 리콴유(李光耀) 전 수상, 라이샤워(Edwin Oldfather Reischauer)전 주일미국대사 겸 하버드 대학 교수, 하버드 대학의 뚜웨이밍(杜維明)교수, 케임브리지 대학의 경제학자 쿠마르 센(Kumar Sen)교수, 하와이 대학의 로저 에임스(Roger Ames)교수, 텍사스 대학의 데이빗 홀(David Hall)교수, 말레아시아의 마하티르 전 수상 등이 아시아적 가치를 긍정하는 대표적 인물들이다. 이에 반해 막스 베버(Max Weber), 김대중 전 한국 대통령, 폴 크루그만(Paul Krugman), 리처드 훌브룩(Richard Hullbrook) 전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차관보, 크리스토퍼 패튼(Christopher Patten) 전 홍콩 총독, MIT 대학의 루시앙 파이(Lucien Pye)교수, TIME지 칼럼니스트 신밍쇼(Sin-Ming Shaw), 하버드 대학의 새뮤얼 헌팅턴 교수 등이 아시아적 가치에 대표적 비판자들이다.
지난 30년간 한국은 국가주도형 경제발전모델로 경제적 기적을 가져왔다. 경제적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부족한 자원을 몇몇 전략 산업에 집중적으로 배분할 수 있는 강력한 권력을 가진 정부가 필요했다. 그리고 부족한 자원과 기술, 노동력을 동원할 수 있는 힘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효율적으로 그리고 전략적으로 투입할 수 있는 지식과 식견과 판단력을 가진 정치지도자와 관료가 필요했다. 그리고 국가의 강력한 경제개발정책에 따르고자 할뿐만 아니라, 농업중심에서 산업중심 사회로의 급격한 전환을 소화해낼 수 있는 규율과 근면성, 기강과 교육열을 갖고 있는 국민이 필요했다. 이런 필요성과 아시아적 가치가 친밀성을 가져 경제적 발전을 가져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부즈·앨런과 해밀턴의 보고서가 분석하듯이, 정부 주도의 권위주의적 성장은 양극화된 경제를 결과했다. 그리고 소수의 재벌 편중, 부정적 대외 이미지, 개혁의 지체, 중국과 일본으로부터 도전받는 이른바 너트크래커(nutcracker) 현상(돈값, 땅값, 인건비, 물류비용을 낮추더라도 중국을 이길 수 없고, 효율성을 높혀도 일본을 잡기 어려운 상황), 행동은 없고 논의만 무성한 무책임한 안일성, 문제의 본질과 심각성에 대한 간과와 합의도출 실패, 비전의 부재, 방법 모색의 실패와 변혁기의 위험을 극복할 주체와 리더십 부재 등이 한국 경제의 문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부정적 결과는 아시아적 가치와 친밀성이 있을 수도 있고, 혹은 그것과 무관할 수도 있다. 프란시스 후쿠야마는 아시아에 금융위기가 도래했을 때, 그 원인은 정책의 실패에서 생긴 것이지 문화적 원인을 갖고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정경유착과 부정부패는 아시아적 가치에 따른 문화적 성향이라기보다는 정책의 실패와 제도적 견제장치의 부재 때문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