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난 후기가 달린 시(37, 그래요)
o 그래요
구녕 이효범
당신과 함께 가기 위해
나는 혼자 이 길을 걷습니다.
당신과 함께 나누기 위해
나는 먼저 이 음식을 먹습니다.
먼 훗날 웃으며 오실 당신을 위해
나는 불속으로도 물속으로도 들어갑니다.
얼굴도 모르는 당신
목소리도 들을 수 없는 당신
그러나 나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바람에 날리는 깊은 계곡의 솔향기로
붉은 구름이 떠도는 저녁의 먼 하늘로
당신은 느리게, 아주 느리게 오십니다.
그래도 나는 샤갈의 수탉처럼 기다립니다.
후기:
사람을 그리스 말로 ‘anthropos’라고 합니다. 이 말은 ‘위를 올려다 볼 수 있는 자’라는 뜻입니다. 동물은 네 발로 기어 다니기 때문에 머리는 항상 땅으로 기울어져 있습니다. 공중을 나는 새도 늘 시선은 땅 위에 있는 먹이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사람만이 두 발로 직립하기 때문에 머리를 똑바로 들고, 자기보다 높이 있는, 보이지 않는 것을 추구합니다.
세속의 쾌락을 버리고 머리를 깎고 출가한 스님은,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을’ 각오로 得道하려고 합니다. 수도원에 들어가 평생을 기도하는 수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절대 진리와 하나가 되는 삶은 가시밭길이지만 거룩한 길입니다. 그런 거룩한 길을 오직 사람만이 기쁨으로 걷고 있습니다.
그러나 거룩은 종교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찌 보면 일상사 모든 것이 거룩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내가 無가 아니고 존재하는 것, 살아 숨 쉬는 것, 먹는 것, 말하는 것이 모두 기적이고 거룩입니다. 내 앞에 당신이 앉아 있는 것도 사실 신비입니다. 무한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블랙홀에 던져지지 않고, 여기 푸른 물이 충만한 낙원 같은 지구에 인간으로 와서, 두 생명체가 만나 사랑을 나누고 있습니다. 이 눈부신 기적과 거룩을 감히 무엇으로 말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