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난 후기가 달린 시(34, 이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o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구녕 이효범
모기처럼 물지도 않고
매미처럼 울지도 않고
벌처럼 쏘지도 않고
잠자리처럼 무심하지도 않고
나비처럼 화려하지도 않고
벼룩처럼 높이 뛰지도 않고
거미처럼 겁주지도 않고
지렁이처럼 이롭지도 않고
바퀴벌레처럼 숨지도 않고,
마냥 달라붙어 손만 비벼대니
어디 목숨이 온전하겠느냐
나의 파리여.
후기:
파리 참으로 만만하다. 가까이와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그러나 벌은 다르다. 벌 중에서 말벌이 어쩌다가 연구실에 들어오면 온통 난리다. 머리끝까지 긴장을 하고 창문을 활짝 열고 전력을 다하여 내보내야 한다. 잘못 맞서 싸우다가 한 방 쏘였다가는 한방에 갈 수 있다.
성경의 창조 신화처럼 그리스의 프로메테우스(Prometheus) 신화에는 창조의 이야기가 나온다. “아주 먼 옛날 신들만이 살고 있었다. 땅에는 아직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 없었다. 때가 되자 신들이 흙과 불로 이것들을 만들었다. 이 일이 거의 끝나자 신들은 프로메테우스와 에피메테우스 형제를 보내어 이들에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재주나 능력을 나누어 주게 하였다. 에피메테우스는 어떤 동물에게는 강한 힘을 주고, 어떤 연약한 동물에게는 빠르게 달릴 수 있는 능력을 주었다. 또 어떤 동물에게는 발톱이나 뿔 같은 무기를 주고, 무기를 받지 못한 동물에게도 그 나름대로 살아남을 수 있는 능력을 주었다. 그는 이 일을 ‘보상의 원리’에 따라 진행하여 어떤 동물도 멸종되는 일이 없도록 배려하였다.”
파리는 발톱이나 뿔 같은 강한 무기가 없다. 그러나 이 신화에 의하면 파리도 그 나름대로 살아남을 수 있는 능력이 주어졌을 것이다. 그것이 무엇일까? 그런 면에서 인간도 파리와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이 신화에는 인간에 대한 재미난 묘사가 있다.
“마지막으로 남은 인간에게는 줄 선물이 없었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만이 신의 선물을 받지 못한 채 여러 짐승들의 위협 속에서 떨고 있는 가련한 모습을 보았다. 그래서 신들이 살고 있는 처소에 몰래 들어가서 불과 지혜를 훔쳐다 주었다. 사람이 함께 사는 데 필요한 ‘정치기술(techne politike)’은 훔쳐 올 수 없었다. 인간은 프로메테우스가 훔쳐 온 지혜로 언어와 이름 그리고 집과 의복과 신발과 처소를 만들고, 불을 이용해 땅에서 얻은 곡물을 음식으로 만들 수 있었다. 몇몇이 떼를 지어 흩어져 살던 인간은 짐승들에게 잡아먹히기 일쑤였다. 그래서 인간은 살아남기 위해서 모여 성곽을 건설하고 함께 살았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모여 사는 데 필요한 정치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서로에게 도움이 되기는커녕 상처만 줄 뿐이어서 다시 흩어지고 말았다. 또 다시 맹수들의 밥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에 인간 종족이 없어질 것을 염려한 제우스가 전령 헤르메스를 보내 인간들이 함께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서로 연대를 맺고 하나가 되는데 필요한 ‘정의감’과 ‘타인을 존경하는 마음’을 나누어 주도록 하였다. 그런 뒤에 이 두 가지 덕목을 갖추지 않은 사람은 사형에 처하도록 하였다.”
거친 자연환경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서 인간은 모여서 함께 살아야 한다. 그런데 함께 살기 위해서는 정의감과 타인을 존경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가 가장 필요로 하는 덕목도 바로 이것이다. 자연적으로는 코로나의 위협, 국제적으로는 우리를 둘러싼 4대 강국의 처절한 이해관계 속에서, 민족이 생존하고 번영하기 위해서는 분열하지 않고 단합해야 한다. 구한말의 실패를 다시 범해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가 정의롭고 국민이 서로 상대방을 존경하는 품격을 갖추어야 한다. 이럴 때만이 민족이 찢어지지 않고 진정으로 단합할 수 있다.
파리가 실제로 손을 비벼대며 아첨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것은 인간이 파리에 가진 오래된 편견이다. 우리는 파리뿐만 아니라 많은 것에 대해서도 근거 없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공직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공직자가 중요하지만 그중에서도 正義社會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검사의 역할이 무엇보다 막중하다. 惡 앞에서 검사는 추상같아야 한다. 똥을 탐하는 파리처럼, 검사가 권력에 아첨해서 출세만 하려고 악을 과감히 척결하지 않고 망설인다면 국가의 기강은 무너지고, 힘이 정의가 되어 사기와 편법만이 판칠 것이다. 검사는 자기에게 주어진 권한 내에서 누구의 눈치도 보지 말고 살아 있는 권력에 과감히 칼을 대고, 힘없는 서민의 눈물을 닦아주어야 한다. 나는 이런 검사에 대한 걱정이 단지 편견에서 오는 杞憂이기를 간절히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