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오늘(시집)

호박 이야기

이효범 2020. 7. 11. 05:37

o 호박 이야기

 

  구녕  이효범

 

먼 옛날이야기입니다.

(안 들으셔도 나는 원망하지 않습니다)

대전 변두리에 우리 집이 있었습니다.

집 뒤는 동산이 넓었습니다.

동산 위에는 명문 여고가 위용을 자랑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곳을 호박밭이라고 놀렸습니다.

공부를 잘하면 모두 동글동글해지는지,

그래서 호박꽃은 꽃이 아닌 줄 알았습니다.

 

나이 들어 고향을 떠났습니다.

(나는 확실히 고향을 떠난 줄 알았습니다)

남자의 운명을 결정하는 결혼식 날

장미를 얻어 좋아했는데 호박밭 출신이었습니다.

아이를 낳은 후 호박죽을 먹였습니다.

오랫동안 호박덩이는 살색으로 곱게 빛났습니다.

 

개똥벌레처럼 40년을 호박밭에서 굴렀습니다.

호박을 마구 찔러대던 나의 야무진 붉은 고추는 시들었습니다.

이제 꼭지에서 떨어진 호박이 동산에서 구르려고 합니다.

아이들은 모두 밖에 나가 있습니다.

나는 잡을 힘이 없습니다.

그래서 눈물로써 기도합니다.

보름달 같은 호박이여 어두운 하늘에서 부디 빛나소서.

나는 멀리서 당신만을 바라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