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난 후기가 달린 시(6, 판결)
o 판결
또박, 이효범
판사는 어린 도둑에게 안타깝게 판결한다. 그 작은 훔친 돈보다 너의 창창한 미래가 더 소중하다. 이번에는 그 판사가 큰 도둑이 되었다. 다른 판사가 그 판사를 엄히 판결한다. 법을 벗어난 욕망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다음에는 이 판사도 또 다시 재판을 받을 것이다.
피가 피를 낳고 그 피는 또 다른 피를 낳듯이 판결은 판결을 낳고 그 판결은 또 다른 판결을 낳는다. 판결로 만들어지는 세상, 수많은 사람이 피를 흘린 세상이다. 피라미드처럼 위대하게 세워지는 세상이다. 그러나 아무도 살고 싶지 않는 세상이다. 찬란한 햇살, 조잘대는 나뭇잎, 강에서 부는 바람은 판결하지 않는다. 웃고 떠들고 노래하는 세상이다. 질서도 없고 위태롭다. 그러나 아이들이 좋아하는 세상이다.
사람만이 감옥을 만든다. 어제의 친구를 오늘은 망설임 없이 그 감옥에 밀어 넣는다. 감옥은 점점 넓어지고 깊어진다. 감옥 안도 감옥이 되고 감옥 밖도 감옥이 된다. 눈을 크게 뜨고 사방을 살펴보며 살아야 하는 세상, 코를 베어가는 세상이다. 심판의 세상이다.
o 후기:
우리 집사람은 초등학교에 근무하였습니다. 그 때는 교사가 그리 인기 있는 직업이 아니어서 나는 시집 못 가는 노처녀를 구원해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은혜도 모르고 아내는 집안에서도 선생님 노릇을 했습니다. 집사람이 1학년 담임을 맡으면 나는 초등학교 일학년 학생이 되고, 5학년을 맡으면 5학년 학생이 되었습니다.
아내는 퇴직을 하고도 40년 훈장 노릇이 몸에 배어서 그런지 사사건건 판결을 내립니다. 심한 것은 음식점에 가서도 간섭합니다. 돈을 내면서 오늘 고등어는 싱싱하지 않다든가 너무 싱겁다고 주인에게 한 마디 합니다. 나는 질색합니다. 아니 판결은 전능하신 신의 소관이지 당신이 어찌 맛의 기준이 될 수 있느냐고 따지면 너무 철학적인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핀잔을 줍니다. 그러면서 맛이 변했다는 그 음식점에 다음에 또 갑니다. 나는 맛이 없어도 음식주인에게 대놓고 불평을 하지 않습니다. 다음에 안 가면 그만입니다.
이런 상반된 태도는 자식 교육에도 그대로 나타납니다. 우리가 어디 과외하고 어머니 치마 바람 때문에 공부를 했습니까. 찢어지게 가난했지만 스스로 알아서 공부하고 대학에 갔지요. 이런 태도는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무책임한 처사라고 아내의 잔소리는 끝이 없습니다. 그래서 아이를 망쳤다고 지금도 나무랍니다. 아마 이점은 아내가 옳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지금까지 나는 내가 잘 나서 공부를 잘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아이들도 그러리라 오판했습니다. 돌이켜 보면 그 어렵고 고통스럽던 시절, 우리 부모님도 세상을 살아가는데 교육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아셨고, 자식이 일등을 한 성적표를 가지고 오면 참으로 기뻐하시며 동네방네 자랑하셨습니다. 나처럼 무관심하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이 점에서 아내에게 대단히 미안하다 하더라도 그래도 나는 체질상 남을 판단하는 것을 꺼립니다. 병원이나 경찰서 가는 것보다 더욱더 싫어합니다. 아니 솔직히 나 자신이 남을 판단할 처지가 못 됩니다. 끝없는 시행착오와 남에게 빚지며 산 인생이었습니다. 반성해보면 지금껏 남을 위해 산적이 별로 없습니다. 바닥을 헤매다가 운 좋게 시대와 사람을 잘 만나 그럭저럭 삶을 지탱했을 뿐입니다.
사실 지금 우리 상황에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판결할 수 있겠습니까. 만백성의 어버이였던 어떤 대통령은 자살을 하고 어떤 대통령은 감옥에 갑니다. 또 판결하는 조직의 수장이 수감이 되는 기막힌 일이 벌어집니다. 더 걱정이 되는 것은 사람의 영혼을 책임지고 있는 종교인들이 망해가는 나라의 제사장처럼 더 타락하여, 거꾸로 그들의 어린 양들이 오히려 그들을 걱정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사회를 이루며 살기 위해서는 正義가 필요하고 정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그 역할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하겠지요. 판결하고 잔소리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모든 인간은 신이 아닌 불완전한 인간일 뿐입니다. 회개를 외치는 사람도 사실 회개를 벗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유토피아라는 선한 목적을 위해 무수히 많은 사람을 죽인 혁명가가 바로 혁명의 첫 번째 대상이 된다는 것을 역사는 가르쳐줍니다.
나는 판결하지 않는 세상을 꿈꿉니다. 아내의 끝없는 잔소리가 무섭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 잔소리 때문에 내가 이만큼이나 사람 노릇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렇지 않았으면 벌써 젊었을 때 필이 꽂혔던 그 화려한 여자를 쫓아가 쪽박을 찼을지 모릅니다. 이제 힘없고 돈이 떨어져 그런지 어떤 때는 아내가 불쌍해지기도 합니다. 저런 잔소리하기가 얼마나 어려웠을까? 그런 잔소리의 뒷면에는 또 얼마나 많은 눈물과 사랑이 있었을까?
그래서 나는 늦게 깨달았습니다. “판결은 필요하다. 그리고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위대하지는 않다. 그 판결을 가능케 하는 깊은 용서하는 사랑과 오랜 눈물의 회개가 인간의 진정한 가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