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으로 떠나는 산티아고 순례길 21(레온)
o 인문학으로 떠나는 산티아고 순례길 21(레온)
o 인문학으로 떠나는 산타이고 순례길 21(레온)
구녕 이효범
하루 종일 버스를 탔다. 내 생애에 차비 내고 이렇게 길게 시외버스를 탄 것은 아마 두 번째일 듯싶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대전의 중학교에 시험 보기 위해 탄 것이 처음의 기억이다. 큰 고개를 두 번 넘어 하루 종일 간 것 같다. 후에 보니 그것은 청양과 정산 사이에 있는 대치고개와 공주와 공암 사이에 있는 마티고개였다. 산길에서 버스 두 대가 만나면 아슬아슬했다. 차는 마을마다 다 서고, 어느 경우는 너무 오래 서기도 하여, 대전에 오니 기진맥진하였다.
오늘이 그러하였다. 아침 9시 45분에 빌바오에서 바야돌리드(Valladolid)가는 버스를 탔다. 레온까지 직접가는 차는 없다고 한다. 12시경에 다시 부르고스에 도착했다. 여기서 20분을 섰다. 고속 도로에는 이따금 기름 넣은 곳이나 쉬는 곳은 있어도, 우리처럼 휴게소는 없었다. 버스 중간 문 옆에 화장실은 있었으나, 여기 내려서 찾아보니 화장실이 따로 없었다. 천상 가게에 들러 무엇을 사 먹고, 그 안에서 줄에 매달은 열쇠로 화장실 문을 따야 하는 구조였다. 아, 우리나라 고속 도로 휴게소의 편리함이여! 그 웅장함이여! 화장실을 무료로 이용하게 하는 그 너그러움이여! 부르고스에서 파렌시아(Palencia)를 거쳐 바야돌리드에 오니 오후 2시 25분이었다. 차표에는 여기서 2시 30분에 차를 갈아타고, 레온으로 가는 것으로 되어 있다. 급히 내리니 레온가는 차는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이 차는 그야말로 옛날에 내가 탔던 완행버스였다. 길옆에 있는 어느 정도 큰 마을은 모두 섰다. 그리하여 레온에 도착한 것이 4시 30분이었다. 기진맥진하였다. 돌아서 온 길도 처음 보는 풍경이라 그런대로 의미 있었다. 바야돌리드 주변은 대평원이었다. 끝없는 지평선으로 이어지니, 하늘이 땅으로 쏟아지는 것 같아, 세상의 5분의 4는 하늘이었다. 내가 이렇게 하늘을 가까이 느낀 것은 어릴 때 이후 처음이다. 그런 하늘에 사방으로 구름이 쉴 새 없이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흐렸다 개이고를 반복한다. 드디어 레온에 도착했을 때에는, 비와 함께 우박이 돌아온 탕자를 맞이하고 있었다.
숙소에 일정을 풀고 급히 나갔다. 어두워지기 전에 레온 대성당을 보기 위해서이다. 표 파는 여자의 얼굴이 참 기기묘묘하다. 그런데 그 여자가 하루 종일 표만 파는 일이 지루했던지, 내가 내는 카드를 보더니 예쁘다고 농담을 건넨다. 나는 당신이 더 예쁘다고 추켜세웠더니 온몸으로 반색을 한다. 선한 거짓말은 하느님도 용서하실 것이다. 이 성당은 아무래도 부르고스 대성당만큼 큰 감동을 주지는 못했다. 그리고 운영 면에서도 한 수 뒤진다. 부르고스 대성당은 입장료가 10유로이지만 순례자에게는 반값을 받는다. 여기는 그런 구분 없이 모두에게 7유로이다. 그러나 이 성당도 나름대로 독특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특히 스테인드글라스가 정교하고 화려했다. 온 창문이 스테인드글라스로 되어 있어 큰 성당이었지만 내부의 분위기는 비교적 밝았다. 성당에서 이어지는 밖의 회랑도 특이했다. 그 주랑에 오래된 기독교 성자들의 입상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레온도 레온 왕국의 수도였기 때문에 역사적 건축물들이 많았다. 올드 타운을 급히 몇 바퀴 돈 후, 나는 식당으로 향했다. 점심을 제대로 먹지 못해 허기졌기 때문이다.
내일부터는 몸을 깃털처럼 가볍게 하고 본격적으로 걸을 예정이다. 아침 일찍 떠나고, 더 빨리 걷고, 더 멀리 걸을 것이다. 그래서 가능한 한 일찍 산티아고에 도착하고 싶다. 오늘 보니 스페인은 생각보다 큰 나라이다. (이런 큰 나라가 이 땅으로도 살기에 충분했을 터인데, 남미를 정복하여, 마야 문명을 무너뜨리고, 거기에 더해서 많은 문화재를 약탈한 것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교통편이 어떤지 알 수 없다. 그러자면 여유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틀을 휴식했기 때문인지 내 발의 느낌은 좋다. 그래, 다시 힘차게 걷자. (2024년 5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