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70에 부르는 인생 노래(66, 인간적인 것)
o 나이 70에 부르는 인생 노래(66, 인간적인 것)
o 인간적인 것
구녕 이효범
소크라테스는 자연의 본질을 찾지 않았다.
자연을 지배하는 필연적 법칙도 논하지 않았다.
그런 일에 골몰하는 사람은 어리석다.
그것은 인간의 한계를 넘는 일이다.
논의하면 할수록 서로 싸움만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인간적인 것이다.
경건과 불경과 아름다움과 부끄러움과,
정의와 부정의와 절제와 용기와 비겁은 무엇인지.
그리고 나라는 사람은 무엇인지.
그리고 정치가와 다스림과 다스릴 수 있은 사람은 무엇인지.
이것들을 아는 사람은 아름답고 훌륭하지만,
모르는 사람은 노예와 같은 사람이다.
마라가는 철학을 좋아하는 비구이다.
“붓다여, 이 세계는 항상하는 것입니까, 무상한 것입니까,
끝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영혼과 신체는 같은 것입니까, 다른 것입니까,
사람은 죽은 뒤에도 계속 존재합니까, 존재하지 않습니까,
이런 문제에 대해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십니다.
저는 이 점이 불만스럽습니다.”
붓다가 조용하고 간곡하게 말했다.
“마라가여, 여기 한 사람이 독화살에 맞았다고 하자.
그는 그 독화살을 쏜 사람이 누구인지, 어떤 활인지,
화살의 살대는 어떠하며, 화살의 깃털은 무엇으로 만들었으며,
화살촉은 어떤 모양인지, 알기 전에는
화살을 뽑아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면 어떠하겠느냐?
그는 그런 것들을 다 알기 전에 숨이 끊어지고 말 것이다.”
공자는 “하늘이 내게 덕을 주었다.”
“나를 알아주는 것은 하늘뿐”이라고 말했지만,
천도(天道)에 관해서는 논하지 않았다.
초월적인 근원은 말로 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체험해야 하는 것이다.
“천자로부터 서인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이 수신(修身)을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
“도에 뜻을 두고, 덕에 의거하고, 인에 의지하고, 육예에 노닐어야 한다.”
공자는 덕을 닦지 못하는 것과, 학문을 익히지 못하는 것과,
의로움을 듣고도 옮아가지 못하는 것과,
선하지 않은 것을 고치지 못하는 것이, 바로 나의 근심거리라고 반성했다.
예수는 고향인 나사렛에서 목수 일을 하면서 가족과 함께 살았다.
그러던 예수가 홀연히 집을 나갔다가, 3,4년 후에 가버나움에 나타났다.
어머니와 형제들이 찾아갔다. 예수는 냉담했다.
“누가 내 어머니이며, 누가 내 동생이냐,
앞으로는 하느님의 뜻대도 사는 사람이, 내 어머니가 되며 형제가 될 것이다.”
인간은 혈연공동체가 아니라, 초월적 실재와 관계된 존재이다.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같이 너희도 완전해야 한다.”
예수는 우리에게 세상에 따르지 말고, 정면 승부하라고 무섭게 가르친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소금이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하겠느냐,
아무 데도 쓸데없이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밟힐 것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추어 사람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