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쓰기와 걷기 3
o 시 쓰기와 걷기 3
구녕 이효범
3-2 니체도 걷기를 좋아했다. 여느 때는 하루에 일고여덟 시간을 걸곤 했다. 그는 사유가 몸에 자리잡고 있었다. “창조력이 가장 풍부하게 흐를 때에는 언제나 나의 근육이 가장 민첩하게 움직였다.” 그는 세상과 인간들이 내려다보이는 야외를 걸으며 구상하고, 상상하고, 발견하고, 열광했다. 자기가 발견한 것에 놀라워하고, 걸으면서 문득 생각난 것에 동요하고, 그것에 사로잡혔다. 그는 1881년 8월에 쓴 편지에서 자신의 감정을 토로했다. “내 감정의 강렬함이 나를 웃게 하는 동시에 전율하게 만든다. 눈이 빨개졌다는 우스꽝스러운 이유로 방을 나서지 못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눈이 빨개진 것일까? 그 전날 오랫동안 걸으면서 너무 울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정이 복받쳐서 운 것은 아니다. 그것은 행복해서 흘린 눈물이었다. 노래를 부르며 비틀비틀 걷다가 문득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는데, 오늘날의 사람들이 누리지 못하는 특권을 내가 누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의 대표작인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도 산책을 통해 완성되었다. “이 책의 근본 사상인 ‘영원회귀 사유’라는,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긍정의 형식은 1881년 8월의 것이다. 나는 이것을 ‘인간과 시간의 6000피트 저편’이라는 서명과 함께 종이 쪼가리에 휘갈겨 썼다. 그날 나는 실바플라나 호수의 숲을 걷고 있었다. 수르레이 근처에 피라미드처럼 우뚝 서 있는 거대한 바위 옆에서 나는 멈추어 섰다. 그때 이 생각이 떠올랐다.” 니체에게 걷는다는 것은 곧 높아진다는 것, 기어오른다는 것, 올라간다는 것이다. 차라투스트라는 말한다. “나 나그네요 산을 오르는 자다. 나 평지를 좋아하지 않고, 오랫동안 한 곳에 조용히 앉아 있지도 못하는 것 같다. 내 어떤 숙명을 맞이하게 되든, 내 무엇을 체험하게 되든, 그 속에는 방랑이 있고, 산 오르기가 있으리라. 사람은 결국 자기 자신을 체험할 뿐이다.”
3-3. 베를렌이 ‘바람구두를 신은 사나이’라고 불렀던 시인 랭보의 삶도 방랑과 기행의 연속이었다. 그는 자신을 “난 그저 걸어 다니는 사람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시의 목적이 ‘새로운 세계에 도착하는 것’이자 ‘포착할 수 없는 세계를 잡아내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의 ‘견자(見者)의 시학’이 여기서 나왔다. 랭보의 시 쓰기는 보는 자(견자)로서 자신이 본 세계를 언어로 옮기는 작업이었다. 그의 ‘나의 방랑’이라는 시를 보자. “나는 떠났다. 터진 주머니에 주먹을 찔러넣고/ 내 오버코트는 역시 아주 꼭 맞는구나./ 나는 하늘 아래서 걸었다. 시신(詩神)이여, 나는 그대의 친구가 되리라./ 오! 라! 라! 얼마나 황홀한 사랑을 나는 꿈꾸었는가, 내가 지닌 단 한 벌의 짧은 바지에는 큰 구멍이 나고/ 작은 꼬마 몽상가. 나는 길을 가며 음률의 씨를 뿌린다./ 내 잠자리는 하늘의 큰곰 성좌/ 밤하늘의 내 별들은 다정하게 속삭인다. 나는 길가에 앉아 그들의 속삭임을 듣는다./ 이 아름다운 9월의 밤, 나는 이슬방울을 느낀다./ 활명수 같은 포도주가 내 이마에 샘같이 솟아나는 것을 환상적인 어두움 속에서 음률을 맞추며/ 한 발을 내 가슴에 대고 리라를 켜듯 내 해어진 구두를 잡아당기면서”
3-4.영국의 낭만주의 시대의 대표적인 시인인 윌리엄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도 거의 매일 레이크디스트릭트를 산책했다. 그의 친구 토머스 드 퀸시는 워즈워스가 평생 28만 km에서 28만 8천km를 걸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워즈워스는 전체적으로 균형 잡힌 몸매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런 악조건과 고향의 ‘힘차고 끈질기게’ 내리는 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느치처럼 걸었다. 느치는 비스듬하게 움직이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벌레이다. 그는 새, 냇물, 수선화, 양으로 이루어진 자연은, 문명 생활에 병든 사람들을 치유해줄 것이라고 믿었다. ‘무지개’는 우리가 잘 아는 그의 대표적인 시이다. “하늘의 무지개 바라보면/ 내 마음은 뛰노네./ 어려서도 그러했고/ 어른 된 지금도 그러하고/ 늙어서도 여전히 그러할 것이네.// 만약 그러하지 아니한다면 신이시여/ 지금이라도 나의 목숨 거둬 가소서.// 어린아이는 어른의 아버지,/ 나의 생애 하루하루/ 타고난 그대로 경건한 마음 이어지기를/ 빌고 바라네.”
워즈워스의 시는 처음에는 강한 저항에 부딪쳤다. 그러나 그는 냉정했다. “이 시들은 괴로운 사람들에게 위로를 줄 것이고, 날빛에 햇빛을 더하듯이 행복한 사람을 더 행복하게 할 것이고, 젊은 사람들과 나이를 막론하고 품위있는 사람들이 제대로 보고 생각하고 느끼도록, 그리하여 좀 더 적극적으로 또 안정되게 덕을 드러내도록 가르칠 것입니다. 이것이 내 시의 임무이며, 나는 이 시들이 우리가, 즉 우리 가운데 죽을 운명인 모든 것이 무덤에서 썩고 난 뒤에도, 오랫동안 충실하게 그 임무를 수행할 것이라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