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범의 시

재미난 후기가 달린 시(18, 오리)

이효범 2020. 2. 29. 13:40

o 오리

 

구녕 이효범

 

오리, 참 우습다.

돈 많은 시골 영감처럼

커다란 궁뎅이 씰룩거리며

뒤뚱뒤뚱 걸어간다.

걷고, 헤엄치고, 날기도 하니

오리, 머리에 힘줄만 하다.

그러나 타조처럼 빨리 걷는 것도 아니요,

가마우치처럼 깊이 헤엄치는 것도 아니요,

솔개처럼 높이 나는 것도 아니라서

사람들, 속으로 킥킥거린다.

그러거나 말거나

오리, 눈치 없는 철학자 마냥

이놈도 쪼아보고 저놈도 쪼아보며

오리무중 세상을 꽥꽥 걸어간다.

 

 

후기:

집에서 기르는 오리를 보면 그 모습이 참 재미있다. 그러나 부지런하고 다정한 새이다. 주변에 오리궁뎅이를 가진 친구들을 보아도 하나같이 선하고 부지런하다.

오리는 털로는 거위를 당할 수 없다. 품질이나 가격 면에서 도저히 경쟁이 안 된다. 또 우아한 자태로는 학을 이길 수 없다. 강가에 긴 목을 드리우고 홀로 걷는 흰 학의 아름다움은 아마 오리가 트럭으로 온다 해도 바꾸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고기 맛은 어떤가? 오리백숙, 내장에 영양가를 가득 싣고 투박한 뚝배기 속에 숨죽여 고요히 돌아서 있는 둥근 모습은, 신혼 첫날 신랑을 맞는 신부의 뒷목보다도 더 섹시하고 더 달콤하다. , 누가 오리의 고기 맛을 따라갈 수 있으랴!

나이가 들수록 오리가 좋아진다. 오리가 맛있어 진다. 오리가 멋있어 진다. 세상은 겉모습으로만 판단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오리한테 배워야겠다.